“불황형 흑자 장기화 … 수출보다 내수 성장 정책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한국 경제의 경상수지 폭이 커진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 경상수지 규모가 반기 기준으로는 사상 처음 500억 달러를 넘어섰고 6월 경상수지도 사상 최대다. 경상수지가 흑자라고 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기에는 내용이 좋지 않다. 경상수지는 단순히 말하면 수출과 수입의 차이다. 수출이 늘어난 결과 경상수지가 오른다면 당연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그렇지 못했다. 올 들어 수출은 내내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다. 경상수지의 다른 변수인 수입이 내수침체 여파로 수출보다 더 줄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끌어올리는 형국이다. 그래서 ‘불황형 흑자’라고 불린다. 한국 경제로선 ‘우울한 사상 최대 흑자’다. 정부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연간 교액액 ‘1조 달러’ 달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은 2011년 교역액 1조 달러를 넘어선 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불안한 영향으로 수출이 좋지 않은 데다 내수 침체에 따른 유효 수요 부족으로 유가 하락이 생산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수입을 줄어들게 만드는 효과만 낳았다”며 “결국 ‘축소균형’이 경상수지를 끌어올렸다”고 지적했다.

 그간 한국경제를 이끌어오던 수출은 올 들어 줄곧 뒷걸음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및 해외에서 이뤄진 모든 수출입거래를 포함하는 국제수지상 상품수출은 지난 6월 493억 달러를 기록해 1년 전보다 2.0% 줄었다. 이 같은 현상은 6월 만의 현상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통관 신고된 물품을 대상으로 한 통관기준 수출의 경우 지난 6월 전년 동월보다 2.4%, 7월은 3.3% 줄었다. 올 1월(-1.0%) 이후 7개월째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며 올 들어 뒷걸음질을 면치 못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통관 기준 6월 수입은 전년 대비 13.6%, 7월은 15.3% 감소했다. 하반기에 접어든 7월에도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흑자폭을 키우는 현상이 이어졌다. 특히 7월에 자동차 수출이 전년 대비 6.2% 하락했고 무선통신기기는 무려 16.0% 떨어지며 주력 제품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런 불황형 흑자를 만든 수출입 여건이 당분간 개선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심상렬 광운대 동북아통상학과 교수는 “한국의 수출이 엔저에 따른 가격경쟁력 하락과 중국의 품질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세계 각국의 수요 하락으로 예전처럼 수출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주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준협 연구위원도 “내수 부진과 저유가가 당분간 이어지는 만큼 유효수요 부족에 따른 수입 부진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는 단기적인 수출 경쟁력 확대 정책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불황형 흑자의 장기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수출중심형 성장구조가 이어지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며 “내수중심형 성장으로 한국경제의 프레임을 바꿔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규제완화와 노동시장 개혁과 같은 다양한 부문에서 구조개선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렬 교수는 “현재와 같은 불황형 흑자를 더 이상 외부변수로 여기지 말고 고착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흑자로 비축된 자금의 상당 부분은 투자처를 찾지 못해 기업 내부에 유보돼 있는 만큼 기업의 투자·혁신 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황형 흑자의 원인은 나쁘지만 그럼에도 적자보다는 흑자가 나은 만큼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래도 적자가 아닌 흑자를 내는 현 상황이 바람직하다”며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쌓인 돈이 인프라 투자 등으로 연결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경상수지=경상수지 통계는 외국과의 상품(상품수지)·서비스 교역(서비스 수지), 배당·이자 거래 등에서 수입과 지출을 모두 합쳤을 때 흑자인지 적자인지 따져보는 ‘국가 가계부’다. 이 중 상품수지는 외국으로 수출한 금액과 수입한 금액의 차로 ‘무역수지’라고도 불린다. 수출액이 수입액보다 크면 상품수지는 흑자가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