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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이 불평등 원인" 27%… 해결해야 할 정부가 불평등 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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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해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모임인 ‘2014 린다우 경제학 회의’에서 중앙SUNDAY와 만나 “불평등은 시장경제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정책과 정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경제 프레임 안에서 더 공평한 사회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정치인들은 증세 등 과감하고 획기적인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불평등 문제에 대해 이런 권고를 내놨다. “조세와 소득 이전을 통한 재분배는 평등과 성장에 기여하는 강력한 정책 도구다.” 불평등 해소는 정치와 정부에 달렸다고 본 것이다.

불평등 첫번째 원인은 상속·증여

그러나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정부 및 정부 정책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중앙SUNDAY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이 공동기획한 ‘국민인식조사’는 정부의 세금과 예산, 부패와 공정성에 대해 물었다.

먼저 세금과 관련해서는 걷는 것, 쓰는 것 모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응답자의 80.84%가 고소득층의 세금 수준이 낮다고 답했다. 세대·지역 간 차이가 없는 일치된 의견이었다. 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납부하는 세금 수준에 대해선 대체로 적당하다고 했다. 상속세율은 높이고(41.2%), 소득세율은 낮춰야(43.9%)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조세는 공평하지 않으며 세금을 더 걷는다면 '부자'에게 과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조사 결과는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설문 결과와도 통한다. 대다수의 응답자들은 불평등의 원인으로 부모로부터의 상속과 증여(38.64%), 조세·산업 정책 등 정부 정책(26.99%)을 꼽았다. 자산의 대물림은 자녀 세대의 격차를 키우고 있는데, 정책은 제 역할을 못해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응답자들이 각국의 세율에 대해 정확한 데이터를 지니고 있고, 그에 기반해 설문에 응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부자 증세를 내세운 프랑스는 45%이며, OECD 회원국 평균은 15%다. 또 우리나라의 소득세 부담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2013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7%다. OECD 평균은 8.6%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근로소득을 통해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노동시장까지 양극화돼 소득 자체가 불안정한 이들이 많아지면서 부를 물려받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격차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나라의 조세제도는 불평등을 줄이지 못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돼 있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의 세전·세후 변동폭이 한국은 0.03로 OECD 회원국 중 칠레(0.02) 다음으로 낮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조세가 불평등 개선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OECD국가 평균은 0.16이다.

정부 지출에 대해서도 43.61%가 정부의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박한 평가를 했다. 그렇다면 정부 예산 중 어떤 분야의 증액과 삭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증액 분야는 경제(61.61%), 안전재난(56.3%), 복지(49.76%), 보건의료(46.73%) 등의 순이었고, 삭감 분야는 통일(32.82%), 문화예술(31.83%), 외교안보(22.37%), 부동산(20.86%) 등의 순이었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경제와 복지는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불평등이 커지는 현실에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다. 기대도 크고 정부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안전재난 예산 증액 응답이 많은 것은 세월호 침몰의 영향이었다. 금 교수는 "세월호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안전은 삶의 질 수준이 높아지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현 조세체계 불평등 개선에 기여 못해

정부의 청렴·공정성도 나쁜 평가를 받았다. 응답자의 48.99%는 우리 정부가 부패했다고, 44.15%는 불공정하다고 응답했다. 청렴하고 공정하는 답은 각각 26.55%, 28.9%에 그쳤다. '공직자에게 금품·향응을 제공할 경우 업무 처리가 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50.8%가 그렇다고 답했다. 5점 척도로 평가하자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시에서만 '그렇지 않은 편'이라는 답이 나왔고, 나머지는 모두 '그렇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금현섭 교수는 "부패가 만연했다고 인식할 뿐 아니라, 그것이 유용하다는 생각이 더해졌다는 점에서 정부의 부패 조사는 우려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평가에선 세대 간 차이가 뚜렷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는 33.25%가 세금 운용이 비효율적이라고 답했지만 이들의 자녀뻘인 에코세대(79~92년생)를 대상으로 하자 수치는 47.81%로 높아졌다. 정부의 공정성에 대해선 베이비붐 세대의 33.08%가 불공정하다고 답한 반면, 에코세대는 51.45%가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정부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임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사회 문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다. 현안인 양극화·노후생활·빈곤·자녀양육의 책임이 정부·개인, 어느 쪽에 있는지 물었더니 양극화에 대해선 응답자의 50.5%가 정부가 해결에 나서야한다고 답했다. 개인 책임이라는 답은 14.44%에 불과했다. 노후생활, 빈곤도 각각 41.22%, 34.66%로 정부 책임이라는 응답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신광영 교수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정부가 정책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비정규직이라도 일정 소득을 올리고 4대 보험 등 안전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노동정책, 주요 자산인 부동산의 불평등 강화를 막기 위한 공공주택 정책,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세제개혁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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