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길어진 저금리 … 작은 빌딩 큰 관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서울 서초동에서 살던 A씨(62)는 지난해 말 아파트를 팔았다. 그 돈과 은행 대출금을 합쳐 경기도 판교에 있는 원룸 건물을 20억원에 매입했다. 은퇴를 앞두고 매월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는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A씨는 “아파트 값이 정체된 데다 아파트 월세도 얼마 안 됐다”며 “금리가 낮아 임대수익으로 대출 이자를 갚고도 추가 수익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B씨(70)는 최근 충청도 고향 땅을 판 돈 20억원을 두 자녀에게 증여했다. 자녀들은 이를 종잣돈 삼아 대출을 받아 서울 광장시장 인근에 있는 60억원짜리 빌딩을 샀다. 증여 시기를 저울질하던 B씨를 설득한 건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였다. B씨는 “저금리 시기엔 시중에 돈이 풀려 투자 기회가 많다는 말에 증여를 결심했다”며 “PB가 아웃도어 브랜드 상설할인점이 들어서면서 임대료가 오른 지역이라며 건물도 추천해 줬다”고 말했다.

 자산가들이 중소형 빌딩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중소형 빌딩이 중위험·중수익 투자처로 떴기 때문이다. 저금리 덕에 대출 부담이 준 것도 거래금액이 큰 빌딩 시장에 개인이 북적이게 된 요인이다. 부동산자산관리업체 리얼티코리아에 따르면 올 2분기 수도권 내 50억원 이하 빌딩 거래금액은 약 78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6%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빌딩 거래금액은 95% 증가했다. 전 분기 대비 증가율도 124%에 달했는데 이 역시 전체 빌딩 거래금액 증가율(66%)보다 높은 수치다. 문소임 리얼티코리아 수석연구원은 “법인 중심이던 빌딩 시장에 개인이 참여하면서 50억원 이하 소형 빌딩 거래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거래량이 증가한 건 수요뿐 아니라 공급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전문위원은 “자산 내 부동산 비중이 높은 베이비부머가 나이 들면서 현금 비중을 높이거나 증여하려는 욕구가 생겼다”며 “이들이 중소형 빌딩 시장의 주요 공급자”라고 말했다. 빌딩 시장에 젊은 참여자가 늘어난 것도 저금리가 만든 풍경이다. 신영증권 패밀리오피스 부동산팀의 윤환진 선임은 “전통적으로 주거용인 아파트 시장엔 젊은 참여자가 많지만 빌딩 시장은 아니었다”며 “그런데 저금리가 되자 증여 등으로 종잣돈을 마련한 젊은 층이 과감하게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의 빌딩 투자를 돕기 위해 증여를 하는 자산가도 많다”고 귀띔했다.

 50억원 이하 빌딩 수요가 늘면서 투자 지역도 2군 상권으로 확대됐다. 50억원으론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같은 1군 상권 빌딩은 매입하기 어렵다. 문소임 연구원은 “아직 개발이 덜 된 대학가, 오피스 건물이 밀집한 가산디지털단지같이 과거엔 주목받지 못하던 지역의 빌딩 거래가 늘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이전해 가는 지역을 중심으로 지방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공급이 있다곤 하지만 수요가 더 많다 보니 투자 시 유의해야 할 게 많다. 문소임 연구원은 “주식이나 펀드처럼 가격·수익률 등의 정보가 공개되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아 투자 위험이 크다”며 “현장을 꼭 방문하고 입주한 상가의 임차인 정보도 꼼꼼히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50억원이 넘는 빌딩을 매입하기 어렵다면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가 안전하다는 지적도 있다. 값이 싼 빌딩은 입지가 나쁘거나 상권이 좋지 않아 공실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윤환진 선임은 “소형 빌딩에 투자하느니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 펀드를 사는 게 낫다”며 “중소형 빌딩에 투자하는 케이탑리츠나 서울 센터원 빌딩에 투자하는 맵스리얼티 같은 펀드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들 리츠 펀드는 거래소에 상장돼 있어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