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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메르스 혼돈의 69일에서 제대로 배우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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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28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인한 불안감을 모두 떨쳐버리고 모든 일상생활을 정상화해 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한국 여행금지령을 내렸던 7개국도 이를 해제했다. 이로써 지난 5월20일 첫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 69일간 계속됐던 메르스 사태가 사실상 끝났다.

 공식적인 종식 선언은 아직 환자 1명이 ‘음성’ 판정을 받지 못해 다음달 하순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그때까지 긴장을 풀지 말고 마무리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당시 유행이 거의 끝났다고 방심하다 사태가 재연하는 불상사를 겪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응급실은 메르스 사태가 끝났다고 경계태세를 멈춰서는 안 된다. 입구를 감염환자용·외상환자용·어린이용 등으로 나눠 내원자를 병원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시스템은 사태 종식과 무관하게 계속 가동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최근 23일간 새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격리도 모두 해제됐다는 점에서 이번 선언은 적절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 사회가 메르스 악몽을 떨치고 하루빨리 경제활동을 비롯한 일상생활에 매진할 수 있는 전기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보건의료체계 개혁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급박한 상황이 끝났다고 사태의 뒷마무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 이번에 드러난 문제점을 철저히 파악하고 제대로 된 답안지를 만들어 국민에게 제출해야 한다. 특히 사태 초기의 잘못된 대처에 대해선 감사를 통해 정확한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릴 사람은 확실하게 물려야 한다. 그래야 정부 기강이 제대로 선다. 보건의료인과 공무원을 비롯한 헌신적으로 대처한 사람들에 대한 포상도 잊어선 안 된다.

 개혁의 뼈대는 잘못된 보건의료체계를 대대적으로 혁신해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시장바닥 같은 응급실, 부실한 병원 감염관리, 가족 중심의 간병문화, 불합리한 의료수가, 감염병 예방을 위한 투자 부족, 역학 전문인력 부족 등 이번에 드러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건의료 전문가와 의료 소비자를 중심으로 각계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는 게 우선이다. 외래 전염병의 국내 전파라는 사안 자체가 보건의료제도·방역행정·보건경제·국제교류 등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얽힌 것이기 때문이다.

 보건의료체계를 제대로 수술하려면 민간과 정부가 힘을 합쳐야 한다. 필요하면 새로운 거버넌스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인 보건의료 개혁을 맡을 민관 기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근본적인 보건의료 시스템 혁신안을 내놔야 한다. 정부와 보건의료계가 머리를 맞대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을 정리하는 『메르스 징비록』을 발간하는 일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실패로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이야말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