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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워킹맘 다이어리

워킹맘 휴가사용설명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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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지영
문화부 차장

“휴가도 저를 위해 써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아이들 일이나 집안 대소사를 해결하기 위해 써야 했죠.”

 얼마 전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크리스마스 패션쇼’의 한 장면이다. 28년 차 워킹맘이 이렇게 털어놓는 순간, 갑자기 울컥했다. 고2, 중2 두 아이를 키우며 보냈던 파란만장한 휴가들이 떠올라서다.

 보통의 워킹맘이 1년에 쓸 수 있는 휴가는 여름·겨울 합쳐 대략 2주일이다. 그 금쪽같은 시간이 휴식도 되고, 교육도 되고, 추억도 되게 하려면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아이가 미취학일 땐 도리어 간단하다. 어린이집 방학 날짜나 육아도우미의 휴가 일정에 맞추면 된다. 직장 일 대신 육아를 떠맡는 게 무슨 휴가냐는 불만은 마음만 어지럽힌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휴가를 알차게 보낼 궁리에 집중하는 게 낫다.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면 여름휴가는 가능한 한 아이 방학식 당일부터 내길 권한다. 요즘 아이들은 평일에 모여 놀기가 힘들다. 방과 후 학원 스케줄 때문이다. 오전 중 학교 일정이 끝나는 방학식 날은 학원 수업이 시작되는 오후 서너 시까지 자유다. 같은 반, 같은 동네 아이들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놀 절호의 찬스다. 엄마들도 덩달아 모이는 경우가 많다. 그날 누군가의 생일파티를 하기도 한다. 아이가 그런 모임에 끼려면 엄마가 함께 있는 게 유리하다. 여름휴가의 첫날엔 그 흐름에 동참하고, 다음 날부터 개인 휴가 일정을 소화하는 게 좋다.

 겨울휴가를 미뤄뒀다 3월 첫 주에 쓰면 꽤 유용하다. 특히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라면 필수다. 입학 직후 첫 1주일은 적응 주간이라 일찍 귀가한다. 학교 준비물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다. 바짝 긴장한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마음을 풀어주는 것도 휴가 기간 엄마의 일이다.

 아이가 중학생이 된 뒤론 휴가 전략이 크게 바뀐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휴가 계획은 학원 방학 일정에 맞춰 짜는 게 제일 속 편하다. 중학생 아들의 시험 기간에 휴가를 낸다는 워킹맘도 봤다. 시험을 치르고 다소 허탈하고 비참한 심정으로 귀가한 아이가 빈집에 들어가는 게 싫다고 했다. 좋아하는 반찬으로 점심을 차려주면서 다음 날 시험 준비를 할 의욕을 북돋운다니, 휴가 낼 만하다.

 워킹맘의 휴가는 이렇게 바쁘지만 나름의 재충전 시간이다.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직장인’이 아닌 ‘엄마’로서의 경험과 인맥을 재충전한다. 휴가를 다녀온 모든 워킹맘에게 ‘잘했다, 수고했다’ 응원을 보낸다.

이지영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