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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과자 해고 문제, 기업에 맡겨야 노동유연성 높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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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노동시장을 개혁하려는 이유는 일하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서다.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일하는 사람이 10명 중 7명(고용률 70%)이 되면 웬만해선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지 않는다. 안정적인 경제 토대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고용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 선진국이 뼈를 깎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하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은 1980~90년대식 고용 법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래서는 급격하게 변하는 세계 시장에 대처하기 힘들다. 고용 사정은 나빠질 수밖에 없고, 새로 고용시장에 진입하려는 청년이 끼어들 틈이 없게 된다. 자칫하면 세대 간 갈등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다. 당·정·청이 노동 개혁을 밀어붙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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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방법이다. 일방적으로 강제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국내 현실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외국의 것을 베껴서도 곤란하다. 그렇다고 세계 흐름과 역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선 노동시장 구조 개혁이란 이름으로 규제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 대표적인 게 청년의무고용제나 고용형태공시제 같은 것이다. 고용형태공시제는 전 세계에서 한국만 시행하는 갈라파고스형 제도다. 기업의 경영 기밀 가운데 하나인 인력 구조를 외부에 공개토록 하는 것은 경영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최근 공공부문에 시행 중인 청년의무고용제를 민간으로 확대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전체 근로자 중 일정 비율을 무조건 청년으로 채우도록 강제하는 것은 고용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 채용은 기업의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돼야 한다. 정부도 이런 점 때문에 공공부문에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키로 했다. 이와 관련, 고용시장부문 석학인 영국 포츠머스대 댄 핀 교수는 “국가가 고용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국가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나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된 시행령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영계는 아예 임금피크제를 법제화하자고 한다. 숙명여대 권순원(경영학) 교수는 “현재의 연공형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며 “임금체계 개편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지 이를 제도화하는 것은 연령 차별과 같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저성과자에 대한 징계나 해고는 기업 자율로 잘 운용되고 있다. 대법원 판례도 인사권으로 인정한다. 정부가 느닷없이 이 문제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면서 노사정 간의 논의가 꼬였다. 성균관대 조준모(경제학) 교수는 “경영의 영역으로 남겨둘 것은 놔두는 것이 유연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노사정 대타협 무용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관련자의 공감대가 없는 정책은 사회 갈등을 유발하고, 개혁을 좌초시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 차례 “타협을 통한 노동시장 개혁”을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식물 상태인 노사정위원회를 정상 가동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노동 개혁에는 대학과 기업의 개혁이나 자정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선진국의 대학은 재학 중에 인턴을 하거나 직업훈련을 받도록 한다. 한국은 아직도 강의실 중심 교육이다. 심지어 대학 교수가 산업 현장 장비의 운용법도 모른다. 이러니 ‘짝퉁 인적자본’을 양산한다는 지적(조준모 교수)이 나온다. 대기업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1000인 이상 대기업의 대졸 초임은 평균 3680만원에 달한다. 300인 미만은 2900만원이다. 갈수록 이 격차는 커진다. 대기업 문만 두드리는 청년만 탓할 상황이 아니다. 고려대 박지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중소기업의 격차만 해소돼도 청년 취업의 문호가 넓어진다” 고 말했다.

 노사 개혁도 병행 추진해야 할 과제다. 노동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줄여 노조의 자율성을 스스로 찾게 해야 한다. 특히 최근 들어 노동계가 정당의 공천권을 놓고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를 없애려면 정치권이 배분식 비례대표를 지양해야 한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 노사 자율을 해치고 정치권과의 결탁을 조장하고 있어서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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