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딛고 성남고 4강행 이끈 정택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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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성남고와 충암고의 제49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일간스포츠·대한야구협회 주최, 케이토토 협찬) 8강전. 0-0으로 맞선 4회 말, 성남고 6번타자 정택순(18)은 입술을 깨물었다. 벤치에서 나온 런앤드히트 사인을 놓치고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아 2루주자 최수빈이 3루에서 횡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1사 1·2루는 2사 2루로 바뀌었다. 그러나 정택순은 실망하지 않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1볼-2스트라이크의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충암고 에이스 고우석의 강속구에 기죽지 않고 힘찬 스윙을 했다. 좌전안타. 그 사이 2루주자 김성협이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들었다. 김성협은 중계된 공보다 조금 먼저 홈에 도착했다. 1-0.

성남고는 5회 터진 최수빈의 적시타로 한 점을 더 달아났다. 충암고는 9회 무사 1·2루 찬스를 잡았으나 한 점을 내는 데 그쳤다.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한 정택순과 7과3분의2이닝 3피안타·무실점한 성재헌의 호투를 더한 성남고는 충암고를 2-1로 물리쳤다. 성남고는 투수 노경은(31·두산)과 키스톤 콤비 박경수(31·kt)·고영민(31·두산)이 활약했던 2001년 이후 처음으로 4강에 올랐다.

경기 뒤 만난 정택순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내 실수였다. 내가 죽더라도 어떻게든 앞의 주자를 진루시키겠다는 의지였다. 팀이 이겨 다행"이라고 말했다. 3학년인 정택순은 대회 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1차전 부산고와의 경기에서도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하지만 16강 원주고전에서는4타수 2안타(2루타 1개, 3루타 1개)1타점을 올렸고, 충암고를 상대로도 멀티히트 행진을 이어갔다. 정택순은 "대통령배 직전 세 경기 연속 무안타였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편하게 아무 생각없이 임했서 좋은 결과가 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진로는 정해지지 않았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성남고는 전국 대회에서 네 차례 우승했지만 대통령배에서는 준우승(1969·93년)이 최고 성적이다. 정택순은 "팀 분위기가 좋다. 개인 성적보다는 꼭 우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택순이 야구를 시작한 건 아버지 정종연(49) 씨의 영향이다. 정 씨는 프로에서는 뛰지 않았지만 상무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정택순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선수였고, 사회인 야구를 할 때 따라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야구와 친해졌다. 야구에 대한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신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가 투수셨다.(지금은 외야수지만)아직도 투수에 대한 꿈이 있긴 하다"며 "오늘 경기 전에 아버지가 팀에 폐만 끼치지 말라고 해주셨다"고 말했다. 아들의 활약을 직접 지켜본 정 씨는 "택순이가 이번 경기를 계기로 더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가 되었으면 한다"며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김효경 기자, 이성웅 인턴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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