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 에이즈 첫 자연 치유…의학계 기대감 높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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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는 그 어떤 의학적 치료로도 완치할 수 없는 불치병 중 하나다. 물론 최근엔 에이즈에 맞설 수 있는 다양한 약물이 개발돼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꾸준한 치료와 약물 복용을 통해 본래 수명대로 살 수 있게 됐다. 에이즈를 불치병이 아니라 만성질환의 하나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에이즈의 진행속도를 최대한 더디게 하면서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각종 치료와 약물의 힘이 필요하다. 병을 치료할 순 없지만 감염 속도를 강력하게 억제해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이른바 ‘기능적 완치’다. 그간 에이즈 퇴치를 위해 수많은 의약품이 개발됐지만 바이러스를 감지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감소시킬 수는 있으되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최근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12년간 약물 치료를 받지 않았음에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 소녀(18)가 발견돼 의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의료진이 발견해 이 프랑스 소녀의 사례를 학회에 보고했고, 이후 에이즈 치료에 대한 학계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BBC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소녀는 에이즈 치료를 받지 않은 어머니로부터 전염돼 태어날 때부터 HIV에 감염됐다. 이 때문에 출생 후 6살이 될 때까지 지속적인 약물 치료를 받다가 6개월간 치료를 중단했는데 체내 HIV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치료를 멈춰 12년간 약물을 투여하지 않았음에도 이 소녀는 HIV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건강한 상태로 살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 발견으로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프랑수아 바레 시누스 박사는 “이번 사례는 HIV 감염자에 대한 조기 치료가 매우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 소녀가 태어나자마자 집중적인 약물치료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후 약물치료를 중단한 이후에도 건강한 상태로 지낼 수 있다는 해석이다.

HIV 감염된 이후 약물 치료를 중단했음에도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완치 판정을 받아 에이즈 치료의 희망이라 불렸던 ‘미시시피 베이비(미시시피에 거주하는 4세 여아)’ 또한 투약을 중단한 지 27개월만에 다시 HIV 바이러스가 검출되며 에이즈가 재발했다.

이 때문에 파스퇴르 연구소에서도 “약물치료 없이 장기간에 걸쳐 차도를 보이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면서도 “이 프랑스 소녀 또한 다시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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