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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주면 휴가비” … 군인 나라사랑카드, 대포통장 악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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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3월 휴가를 나온 육군 모 부대 소속 A(22) 상병의 휴대전화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나라사랑카드와 통장을 잠시 빌려 주면 그 대가로 돈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군인 봉급을 받는 것 외에 나라사랑카드를 사용할 일이 없었던 A 상병은 문자를 보낸 사람에게 8만원을 받고 본인 명의의 카드와 계좌를 건넸다. 일주일 뒤 A 상병은 자신의 카드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됐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 조사를 받았다.

 같은 달 다른 부대의 B(28) 중사는 낮은 신용등급 탓에 급히 쓸 돈을 구하지 못해 고민하던 중 한 브로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브로커는 “지금 당장 대출을 해 줄 테니 나라사랑카드 계좌를 빌려 달라”고 했다. B 중사는 나라사랑카드를 건네고 비밀번호를 알려 준 뒤 150만원가량의 소액대출을 알선받았다. 하지만 B 중사는 한 달 뒤 해당 계좌가 보이스피싱 조직이 범죄수익을 해외로 빼돌리는 중간 계좌로 이용됐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매년 35만 명의 장병이 가입하는 나라사랑카드가 보이스피싱 조직 등의 ‘범죄카드’로 악용되고 있다. 범죄조직이 급전이 필요한 현역 군인이나 예비군에게 접근해 나라사랑카드 계좌를 넘겨받은 뒤 대포통장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면서다.

 2005년 도입된 나라사랑카드는 병역의무자가 징병검사 때 발급받아 예비군 임무가 끝날 때까지 급여 등을 지급받는 체크카드다. 병역증·전역증은 물론 예비군 훈련 시엔 신분 확인증으로도 활용된다. 지금까지 약 287만 명에게 나라사랑카드가 발급됐다. 용도가 대부분 ‘군용(軍用)’이라서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19일 본지가 입수한 육군의 ‘나라사랑카드 계좌 대포통장 거래 현황’ 문건에 따르면 나라사랑카드 계좌는 지난해 748건, 올해는 4월까지 315건이 매매됐다. 대포통장 양도 등의 사유로 군 내부에서 자체 처벌을 받은 사례도 2012년 38건, 2013년 90건, 지난해 86건이었고 올해 5월까지 52건을 기록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 기자가 한 인터넷 거래 사이트에 ‘나라사랑카드를 판매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더니 “내가 브로커인데 지금 바로 거래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이 브로커는 “일주일 동안만 사용하게 해 주면 10만원을 바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어떤 용도로 쓰이느냐고 물었더니 “개인적인 입출금 거래를 위해 사용되고 짧은 기간만 이용하기 때문에 안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자금융거래법은 예금통장·체크카드 등을 양도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경찰 관계자는 “대가를 지급받지 않더라도 계좌를 양도하면 처벌 대상”이라며 “더욱이 해당 계좌가 보이스피싱 사기에 이용된다면 피해자로부터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당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국희·백민경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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