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트럼프, 전쟁 영웅 험담했다가 자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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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전에 뛰어들어 ‘막말 마케팅’으로 재미로 봤던 도널드 트럼프가 결국 입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 공화당 후보 경선전에 나선 트럼프는 18일(현지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에임스에 열린 보수단체 행사인 ‘패밀리 리더십 서밋’에서 같은 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전쟁 영웅이 아니다”라고 격하했다. 트럼프는 “매케인이 포로로 붙잡혔기 때문에 전쟁 영웅이라는데 나는 포로가 아닌 이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매케인 의원은 그간 트럼프의 불법이민자 비판 발언에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트럼프는 트위터에 “매케인은 해군사관학교를 반에서 꼴찌로 졸업했다. 멍청이”라며 인신 공격을 했다가 이번엔 공개 석상에서 비난했다.

베트남전에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던 매케인 의원은 1967년 전투기가 격추돼 다리와 두 팔이 부러졌다. 매케인 의원은 5년여의 포로 생활 동안 거의 매일 구타를 당하며 심문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매케인 의원은 지금도 걸을 때 약간 절고 팔을 어깨 위로 올리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매케인 의원은 2008년 공화당의 대선 후보였고 지금은 상원의 군사위원장이다.

공화당은 트럼프에 발끈했다.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는 “(대선 후보 경쟁에서) 즉각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비방 공격은 이제 그만”이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스콧 워커 위스컨신 주지사는 “매케인 의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공화당 바깥에서도 비난이 튀어나왔다. 매케인 의원의 상원 동료였던 존 케리 국무장관은 성명을 내 “매케인을 붙잡은 이들은 그의 뼈를 부러뜨렸지만 그의 정신은 꺾지 못했다”며 “매케인은 영웅”이라고 밝혔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복무 경력을 추궁했다. WP는 “트럼프는 학생 징병 연기와 의학상의 이유로 인한 징병 연기를 수 차례 받아 베트남전에 참전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발의) 뼈에 돌기가 생겨 징병 연기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어느 발인지는 기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그간 막말 행진을 통해 주가를 높였다. “멕시코 불법이민자들은 성폭행범”으로 비난하며 남부 보수 백인층의 속내를 대변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선 “왜 출생 서류를 공개하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해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출생이 아니라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번엔 공화당의 정서를 거스르며 ‘트럼프 현상’을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조기 거품으로 끝날지 기로에 서게 됐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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