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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요리 명장 박효남의 손가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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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chef) 전성시대다. 요즘 방송·신문·잡지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연예인에 버금가는, 어쩌면 능가하는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들의 등장을 보면서 항상 떠오르는 이가 있다. 요리 명장 박효남이다.

이미 십 수년 전 광고모델로도 등장했으며, '성공시대'란 프로그램을 장식하기도 했다.
38살에 힐튼호텔의 이사가 되었고 상무로서 총주방장(Executive Chef)을 지냈다.
흔히들 그를 요리계의 스타라 불렀다. 지금의 대세 요리 스타들 이전의 원조 스타였다.

꽤 오래 전부터 그를 알고 지냈지만 호텔 총주방장과 여행·레저 담당 사진기자로서의 만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가 신문지면에 필요한 음식을 만들어 주면 사진으로 찍어내는 관계였다.

언제부턴가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 검지가 잘려 있었다. 요리사와 잘려진 검지,
뭔가 이야기가 있을 듯했다.

궁금했다. 그래도 쉬이 물어볼 수 없었다.
남의 아픔, 궁금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족히 수 년간 궁금증을 묵혀 두었다. 그러다 농담을 한번 툭 던졌다.
“언제 시간 나면 그 손 사진 한번 찍으시죠?”
그는 대답 없이 씩 웃었다.

대답 대신 보여준 웃음, 그 덕에 전화를 했다.
대뜸 ‘불-완벽 초상화’를 찍자고 했다.
예전에 지면에 연재했던 초상화 시리즈였다. 아름답고 멋있게 찍는 초상화가 아니었다. 고통·트라우마·콤플렉스·장애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찾아보는 초상화 시리즈였다.
그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예전부터 봐 왔었는데 감히 여쭤보지 못했습니다. 손가락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어릴적 여물 써는 작두에 잘려나갔습니다. 친구가 작두를 밟았는데 두 마디가 잘려버렸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잘린 손가락을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친구가 무서워서 뒷산에 묻어버렸어요. 그래서 이렇게 됐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니 뭘 알았겠어요.”
그러면서 웃었다.

“그 친구 요즘도 만나요?”
“그럼요. 오히려 고맙습니다. 나머지 아홉 개는 남았잖아요. 다 잘렸으면 요리사도 못했을 텐데…”라며 또 웃었다.

요리사가 된 과정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중학교 졸업 후 수도요리학원을 다녔어요. 1978년 하숙정 원장의 추천으로 하얏트호텔에 주방보조로 취직했습니다. 그때 이력서에 적은 게 단 세 줄이었습니다. 초등학교·중학교 졸업과 조리사 자격증, 딱 세 줄이었어요. 말도 안 되는 경력으로 시작했죠.”

어김없이 또 웃는다.
손가락 잘린 이야기, 친구 이야기, 딱 세 줄 이력서 이야기. 당시엔 분명 웃을 수 없는 일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된 게다.

검지를 부각해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찍었다.
연재 후, 사실 염려스러웠다. 아무리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구태여 그 손가락을 부각한 사진이 달가울리 없으리라 생각했다.

후에 사진을 한 장 보내달라고 전화가 왔다.
그 사진을 한 장 갖고 싶다는 그의 말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달가울리 없으리라 지레 짐작했었는데 소장하고 싶다 하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 초 다시 전화가 왔다. 책을 출간할 예정인데 그 사진을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 하라 했다. 최근 그의 책이 출간되었다.
책 표지에 '긍정의 손끝으로 세상을 요리하라'는 제목과 함께 그 사진이 사용되었다.

제목을 보자마자 예전에 들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다 잘렸으면 요리사도 못했을 텐데 나머지 아홉 개는 남았잖아요. 손가락을 잘리게 한 그 친구가 오히려 고맙다’고 했던 그 말.
바로 긍정의 힘을 이야기한 거였다.

지난해 그는 대한민국 요리 명장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올해부터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도 겸한다.
아홉 개의 손가락, 딱 세 줄의 이력서로 시작한 그의 요리 인생. 긍정의 손끝으로 박효남 이름 석 자를 만든 것이리라.

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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