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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절반 “한국 사회, 하층 시민이 다수인 피라미드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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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호 04면

대구 서문시장은 섬유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전국적으로 유명한 원단시장이었다. 경제가 침체되면서 시장도 예전 같지 않다. 포목을 취급하는 상점의 상인이 누운 채 가게를 지키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북구엔 칠성동과 침산동에 걸친 넓은 공터가 있다.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11만3061㎡(3만4000평)의 반듯한 땅은 1995년 제일모직 대구공장이 구미공장과 통합·이전하면서 남겨진 것이다. 역이 멀지 않은 도심인 데도 땅은 수차례 개발계획이 번복되면서 20년 동안 방치됐다. 지금 이곳엔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9월 대구시와 함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출범시킨 삼성그룹이 내년 말까지 창조경제단지를 건립하기로 하면서다. 땅은 역할을 찾게 됐지만 폐허 같았던 공장 터는 대구에 잃어버린 시간의 상징이었다. 대구 시민에게 공장 이전은 1970~80년대 호황을 누리던 섬유산업의 종언과 같았다. 시민들은 그때부터 경제도 내리막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국민 사회계층 인식 속을 보니

이후 대구는 끊임없이 새로운 동력을 모색했다. 하지만 90년대 말 섬유산업 부활을 위해 추진한 ‘밀라노 프로젝트’는 실패했고 산업구조 개편도 여의치 않았다. 대기업을 유치해 자동차 부품산업,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등 첨단 산업을 육성하려 했지만 성과가 미진했다. 그러는 동안 젊은이들이 도시를 떠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에서 타 지역으로 빠져나간 순유출 인구는 1만6000여 명. 서울에 이어 둘째로 많이 줄었다. 더 큰 문제는 유출 인구 중 9000명 이상이 20~39세라는 사실이다. 2013년에도 20대 인구는 7000여 명이 줄어 전체 인구 감소분에서 61.4%를 차지했다. 장기 침체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해지면서 이 지역 정서는 착잡하다. 이 같은 분위기는 대구에서 좀 더 두드러졌을 뿐 전국적인 현상이다.

상대적 소외감에 국민 스스로 하향 평가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중앙SUNDAY가 공동 기획한 이번 조사 결과 국민들은 대체로 자신의 계층을 하향 평가하고 있었다. 89%가 자신을 우리 사회에서 ‘중의 중’ 이하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중산층은 꽤 두껍게 형성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인 중위소득 50~150%를 근거로 한 정부 추정으론 국민의 약 66%가 중산층이다. 왜 이런 간극이 생겼을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중산층에 대한 인식과 현실의 괴리다. 이번 조사에선 ‘자신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을 답해달라’고 했다. ▶세후 월 소득 510만원 ▶금융자산 2억5990만원 ▶매매가 3억7600만원의 34.9평 주택 보유 ▶4년제 대졸 이상 학력이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이런 주관적 기준은 자신의 사회적 계층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자신의 현실이 기준에 못 미칠 경우 스스로를 ‘중간 이하’ 계층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런 결과와 정부의 중산층 기준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정부가 중위소득을 근거로 산출한 중산층 월 소득은 211만~633만원이다. 기준 폭이 넓은 데다 설문 응답자가 생각하는 월 소득 기준의 최고치(대구, 636만원)·최저치(인천, 457만원)와도 동떨어져 있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통계와 체감의 괴리는 개념 자체의 모호성 때문에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중산층의 개념엔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영위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데, 측정과 평가는 문화·사회적 측면보다 소득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가 발표한 ‘한국형 사회갈등 실태진단 연구보고서’에서도 주관적 계층 인식과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은 가구 소득이었다.

금 교수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판단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준거집단에 비해 소득이 높으면 긍정적으로, 반대의 경우엔 부정적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조사에선 월 소득 100만~199만원인 사람은 월 451만원으로, 400만~499만원인 사람은 월 516만원으로 중산층 기준을 내세웠다. 소득이 많아도 기준, 즉 준거가 높아 체감 계층이 낮아지는 것이다.

전반적인 하향 평가는 한국사회 구성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응답자의 44.9%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소수의 상층 엘리트와 더 많은 중간층, 가장 많은 하층이 구성하는 피라미드 형태로 인식했다. 20.4%는 상·하층만 존재하고, 중산층은 결여된 ‘I’ 형태로 바라봤다.

소득에 대한 불평등 인식 가장 심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 정도에 대한 반응도 갈렸다. 전반적인 수준에서는 ‘불평등한 편이다’는 36.9%, ‘평등한 편이다’는 33.4%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득수준에 대해 평가하라고 주문하자 ‘불평등’이 47.3%로 늘고 ‘평등’은 28.1%로 줄었다. 주거 수준에 대해서는 ‘불평등’ 39.2%, ‘평등’ 30.8%였다. 반면 교육 수준에 대해선 ‘불평등’ 32.1%, ‘평등’ 36.6%였다. 소득의 불평등을 훨씬 심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지역별로는 전북이 우리 사회를 가장 불평등하다고 인식했다. 점수로는 2.7689점으로 유일하게 3점을 넘지 못했다. 소득·주거·교육으로 나눈 항목에서도 각각 2.6322점, 3.0147점, 3.4009점으로 가장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다. 이어 전남(3.7279점), 제주(3.8357점), 광주(3.9057점), 강원(4.0106점) 순으로 불평등하게 평가했다. 이들 5개 지역은 세부 항목에서도 일관성 있게 낮게 점수를 매겼다.

반면 울산은 평등 수준도 높게 평가했다. 전반적 수준에선 5.4764점으로 최고점을 줬고, 소득·주거·교육 수준에서도 고르게 긍정 평가했다. 지역내총생산(GRDP)이 가장 높은 울산이 한국을 평등하게 바라본 것처럼 개인 역시 소득이 많을수록 평등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월 소득 100만원인 응답자가 모든 항목에서 4.5점 미만의 점수를 준 반면, 월 소득 500만원 이상인 응답자는 두루 5~5.5점으로 평가했다.

여기서도 긍정·부정 평가는 상대적인 결과다. 수치로 따지면 응답자들은 한국을 그다지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0점 척도 평가에서 ‘불평등 수준을 수용할 만하다’가 5점, ‘매우 평등하다’가 10점이었다. 울산 시민이나 월 소득 500만원 이상인 사람이나 한국 사회의 불평등 수준을 그저 ‘수용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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