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국정원 직원 자살로 잠정 결론…유서에 "내가 한 일에 대해 떳떳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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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국정원 직원이 18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18일 낮12시2분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의 한 야산 중턱에서 국정원 직원 임모(45)씨가 마티즈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당시 임씨는 운전석에 숨진 채 앉아있었으며, 조수석 앞과 뒷좌석에는 다 탄 번개탄이 남아있었다. 조수석에선 A4 용지 크기의 노트에 자필로 쓴 유서 3장도 발견됐다. 유서에는 가족과 부모, 직장에 보내는 내용이 각각 담긴 것으로 파악됐지만 경찰은 유가족들이 완강히 공개를 거부해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임씨는 국정원 본원에 근무하는 직원으로, 해킹 프로그램 관련 업무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임씨가 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과 관련 있는 국정원 직원이냐"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 "직책이나 구체적인 업무를 공개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 분야에서 유능한 전문가라고 하던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사기관 고위 관계자도 "유서에 업무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국정원장의 허가가 있어야 공개가 가능하다" 며 "유가족과 국정원장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 이라고 말했다. 유서에 해킹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임씨는 최근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이 ‘민간인 사찰’ 의혹 등으로 확산되자 심한 압박감에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임씨가 유서에 '내가 한 일에 대해 떳떳하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안다"며 "특정 기관이나 인물을 향해 원망하는 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임씨가 집을 나선 건 이날 오전 5시쯤이다. 임씨의 부인은 “남편이 평소처럼 출근하는 것으로 느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5시간여가 지난 오전 10시30분쯤 임씨는 경찰과 소방당국에 "남편을 찾아달라"고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부인이 왜 갑자기 실종 신고를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인근 야산 일대를 2시간 가까이 뒤진 끝에 임씨를 찾아냈다.

경찰은 임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 등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지만,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18일 당일 임씨의 동선을 확인하는 한편 구체적인 사망 경위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용인=오이석·박수철·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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