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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린 ‘의료쇼핑’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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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메르스도 이제 거의 끝이 보이니 참았던 얘기 하나 하고 싶다. 지난달 세계보건기구(WHO) 측은 한국에서 메르스가 빠르게 확산하는 원인의 하나로 ‘의료쇼핑 문화’를 지적했다. 이로부터 의료쇼핑은 ‘문명국 시민이 해선 안 될 일’로 질타당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초까지 ‘의료쇼핑’에 나섰던 나는 뜨끔했다. 한데 취약한 시민의식에 대한 반성보다 억울함이 앞섰다. 먼저 내 의료쇼핑의 시작은 느닷없는 어지럼증이었다. 이에 평소 안 하던 건강검진도 하고 이런저런 추가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또 받았다. 결과는 ‘이상무’. 병원에선 답을 찾지 못하고 2주간 휴가를 내고 쉬었다. 그리고 나았다. 의사들은 온갖 검사를 다 하고도 왜 내게 “그냥 쉬라”고 권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이어 오른쪽 어깨와 팔에 극심한 통증이 생겼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MRI부터 여러 검사를 하고, 비급여 기계 치료도 받았지만 낫지 않았다. 의사는 ‘수도’를 권했고, 상담사가 상담을 했다. 그에게 효과를 물었다. 한데 그는 “실손보험이 되니 밑지지 않는다”란다. 보험금 타자고 없는 시간 쪼개서 효과도 제대로 모르는 실험대에 몸을 누이라는 것인가. 이 병원은 패스. 또 다른 병원에서도 처음부터 시작되는 검사와 여러 종류의 비급여 치료법을 제안받았다. 효과는 없었다. 결국은 정보전. 친구와 선배들로부터 효험 있다는 병원과 각종 민간요법까지 두루 취재하고, 안마와 침술로 용한 곳에서 통증을 상당히 잡았다.

 의료쇼핑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우리의 훌륭한 건강보험 시스템 덕에 진료비가 싸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야말로 탁상공론식의 ‘모르는 말씀’이다. 병원에 가면 각종 효험 있다는 진단법과 치료법 상당수가 비급여다. 돈이 많이 든다. 실제로 한국인들 중 의료쇼핑 중독자는 많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를 보면 지난해 자기가 낸 보험료보다 급여비가 적은 가구가 53.9%다. 소득계층이 하위일수록 보험급여도 떨어진다. 저소득층은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든 거다.

 병원엔 아픈 사람이 간다. 한데 병명도 모르면서 많은 비급여 검사만 하고 다시 오라고만 하는 병원을 보면 병원과 의사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게 된다. 이러다 보면 ‘아프면 스스로 의사가 돼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고, 왜 노인들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사기에 번번이 걸려드는지 확 이해가 된다. 내 아픔을 고쳐줄 의사를 찾아다니는 건 환자들의 상식이다.

 이게 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낮아서일까. 아니다. 지금 뭇매를 맞는 삼성서울병원도 4개 병원을 돌면서도 원인을 몰랐던 메르스 1번 환자에게서 이름도 생소한 ‘메르스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또 심장이식·간이식 등 온갖 어려운 수술로 사람 살려내는 것도 여럿 봤다. 공부 제일 잘하는 학생들은 의대에 간다. 한국에 의료관광 오는 외국인도 많다. 세계적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쇼핑을 부추기는 ‘못 믿을 병원’이 된 원인을 의사들은 낮은 보험수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병원에 부르는 횟수를 늘리고 각종 비급여 진료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최근 ‘의료개혁’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한데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의료정책과 개혁과제는 ‘의료산업’에 맞춰져 있다. 어떻게 수익 창출을 하느냐. 요즘은 의료수출로 돈벌이를 하는 게 관건이다. 논의의 초점은 ‘돈벌이’이다. 한 예로 의료계의 첨예한 이슈인 원격의료 얘기가 나오면 일각에선 ‘삼성 앞잡이’라며 질타하고 의료 민영화에도 돈 문제부터 거론한다. 나는 두 안건에 대해선 중립이므로 다른 오해는 없으시길.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의료개혁 논의에서 환자의 고통 감소 같은 환자 복지가 우선과제였던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거다. 이를 보며 환자는 ‘액면가 ○○원짜리’로 취급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의료소비자 입장에서 앞으로 전개될 의료개혁 논의에선 환자 복지를 최우선에 두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