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의 이란 핵 타결…북한 핵프로그램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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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포함한 서방 6개국과 이란이 13일(현지시간) 핵 협상을 타결했다. 이로서 2002년 이란에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이 존재한다는 폭로로 시작된 이란 핵 위기가 13년 만에 해법을 찾았다. 서방 6개국(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러시아ㆍ중국ㆍ독일)과 이란 협상단은 지난달 30일이던 협상 마감 시한을 세차례나 연기하는 우여곡절 끝에 이날 최종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날 타결로 등장한 ‘이란 모델’은 이란의 원심분리기 숫자를 줄이고 고농축 우라늄 제조를 차단하는 등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ㆍ축소해 이란의 핵 무기 개발을 막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군사시설을 포함한 핵 활동 의심 시설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대신 이란에 대한 경제ㆍ금융 제재는 IAEA 사찰 결과에 따라 이르면 내년 초 해제하도록 했다. 유엔 등이 이란에 대해 취했던 무기 금수 조치와 탄도미사일 제재도 해제키로 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란이 핵 보유국 지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감시할 권한을 확보했고 이란은 오일 달러를 포함해 수십억 달러의 현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악의 축’으로 지목되며 국제 사회의 이단아였던 이란은 핵 협상 타결 과정에서 미국의 협상 파트너로 대접받으며 중동의 강자로 등장하는 외교적 성과도 얻었다.

이란 모델을 가능케 한 동력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현실 외교다. 과거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적과도 대화할 수 있다는 오바마 독트린은 이란 핵 협상 타결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었다. 미얀마 방문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초청, 쿠바와 국교 정상화에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이란과 집요한 핵 협상으로 성과를 냈다. 특히 이란과의 핵 협상은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수니파 IS의 적인 시아파 이란’과의 암묵적인 협력 관계가 숨은 배경이다. 이란이 개입한 시아파 민병대는 쿠르드족 페쉬메르가 민병대와 함께 IS 격퇴전의 주력이다. 이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반발과 국내 공화당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대화 노선을 고수했다. 공화당은 미국 의회의 권한인 60일간의 검토 기간 이란 핵 합의를 거부할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어 공화당의 반발은 아직 변수로 남아 있다.

이란 모델은 마지막 남은 북한 핵에 대해선 빛과 그림자를 함께 만들고 있다. 차두현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이란 핵 타결로 미국은 일단 이란이 제2의 북한이 되는 것을 차단했다”며 “북한은 핵 개발에서 더욱 외로워졌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핵 실험을 하지 않은 이란을 상대로 마련된 이란 모델은 핵 실험을 한 북한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대북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란 모델의 핵 프로그램 동결은 핵무기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했다”며 “북한에 속았다고 느끼는 미국이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에 대해 이란 협상에서처럼 유연성을 보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란 모델이 북한에 ‘몸값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차 연구위원은 “핵 무기도 없는 이란에 비해 핵 무기를 보유했다는 북한은 스스로의 몸값을 크게 착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유가 연일 하락= 국제 유가는 이란 핵 협상 타결 전망만으로도 11일 이후 사흘째 하락했다. 14일(한국시간) 현재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값은 배럴당 51달러대다. 외신들은 핵 협상 타결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정도 하락해 WTI 기준으로 배럴당 41달러 선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원유 매장량을 기록하고 있고 하루 원유 생산량은 330만 배럴이다. 그러나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해 하루 100만 배럴도 수출하지 못해 왔다. 이번 핵 협상 타결로 이란 원유 수출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어 유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강남규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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