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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11년 만에 성사된 한·일 바둑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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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문규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종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원유철(국회 기우회장) 의원과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가 지난 11일 첫 대국을 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정종문
정치국제부문 기자

11일 오후 국회 사랑재는 8개의 바둑판 위에 떨어지는 경쾌한 바둑돌 소리로 가득 찼다. 한쪽에는 한국 국회의원이, 반대쪽엔 일본 의원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이들은 3시간 동안 각자 흰 돌과 검은 돌을 잡고 ‘수담(手談·손의 대화)’을 나눴다.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한·일 의원 친선 바둑 교류’에서 양국 의원들이 마주 앉은 건 11년 만이다. 첫 대국에서 간 나오토(菅直人·바둑문화진흥의원연맹 대표·69) 전 총리와 새누리당 원유철(국회 기우회장) 의원이 맞붙었다. 50분 만에 간 전 총리의 불계승(不計勝·계산할 필요 없이 이김)이었다. 대국을 지켜보던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은 “원 의원이 일부러 져주고 있는 것 같다. 기우회장을 하실 만하다”며 웃었다. 긴장한 모습으로 연신 물을 마시던 간 전 총리는 원 의원의 ‘항복 선언’에 웃음을 보였다.

 간 전 총리는 새정치민주연합 최규성 의원과의 두 번째 대국에선 28집 차이로 졌다. 하지만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복기(復棋)를 하면서 “두 번째 대국에선 한 번 더 이겨보자는 욕심에 적극적으로 공격했는데 그게 패인이 됐다. 정치에서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며 최 의원에게 말을 건넸다. 최 의원은 “바둑을 둬보니 실리를 택하시는 분 같다”고 화답했다.

 다른 테이블에서도 “제가 운 좋게 이겼다”(새누리당 김기선 의원), “잘하는 사람이 이기기 마련이다. 깨끗이 졌다”(다우라 다다시·田浦直·전 의원)는 덕담이 오갔다. 이런 분위기를 살린다면 헝클어진 양국 관계가 풀릴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다.

 11년 만의 반상(盤上)외교엔 ‘삼고초려’가 있었다. 2013년 10월 당시 국회 외교통일위원이었던 원 의원은 국정감사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길에 간 전 총리를 만나 ‘바둑 교류’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주일대사였던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자리를 주선하는 등 적극적으로 뛰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엔 원 의원과 수석부회장인 최규성 의원, 총무인 김기선 의원이 다시 현해탄을 건넜다. 올해 2월 바둑교류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지난해 11월 일본 중의원이 해산되고 총선이 실시되면서 기약 없이 표류했다. 그러자 원 의원이 지난 5월 행사차 한국을 찾은 간 전 총리를 다시 만나 “7월엔 반드시 열자”고 약속하면서 어렵사리 성사됐다.

 이날 3시간에 걸친 대국이 끝난 뒤 “바둑을 통해 상대와 감정이 이어진 느낌”이었다는 간 전 총리의 말에 한·일 의원들은 공감했다. “8월 한·중 바둑 교류에서 한·중·일 교류에 대한 확답을 받겠다”(원 의원)는 약속이 결실을 봐 3국의 정치인들이 바둑판 앞에 앉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정종문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