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이어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조금 전에 수술 끝난 젊은 친구, 목소리 어떄?"

"괜찮은 것 같은데요. 약간 변했다고 봐야 하나..."

"어디 그럼 마취 회복실로 가보자. 흠~~, 마취가 거의 다 깼군. 아~~~, 소리 내어 보세요"
"아~~. 아~~"

"OK, 괜찮네, 성대성형술(thyroplasty)이 잘 된 것 같군, 일상 생활 하는데는 큰 지장 없겠다"

이 젊은 남자사람 환자는 오늘 갑상선 전 절제술+ 양측 중앙경부청소술 + 양측 옆목림프절 청소술(곽청술)+ 오른쪽 성대 성형술을 받았다.

엄청 큰 수술인 것이다.

이 환자가 처음 필자를 찾은 것은 지난 5월14일이었다. 오른쪽 옆목 턱밑에 눈에 보일정도로 불룩하게 자란 종양을 주소로 찾아 온 것이다.

처음 목에 이상이 있다고 느낀 것은 1년전쯤이었고 불룩하게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2개월전 부터라고 한다.

가지고 온 초음파영상을 보니까 아이구야, 세상에 ~~,이렇게 심하게 퍼져 있다니.

오른쪽 턱밑에 어른 주먹만한 혹이 반은 낭성화(물혹)가 되어 있고, 그 밑으로 연이어서 크고 작은 전이 림프절들이 감자밭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왼쪽 옆목에도 여러개의 석회화된 전이 림프절들이 포진하고 있다.

오른쪽 갑상선 날개는 전체가 다 혹으로 대체되어 있는데 이거야 말로 대형 눈폭풍(snowstorm)인 거라. 눈폭풍의 핵으로 부터 하얀 눈발이 여기저기로 휘날리고 있고.... 석회화된 암세포 덩어리가 여기저기 퍼져 있다는 뜻이다.

"햐~~, 이건 전형적인 미만성 석회화(경화성) 변종(diffuse sclerosing variant of papillary thyroid carcinoma)이다"

암이 퍼진 정도를 알기위한 초음파스테이징 검사와 목CT와 폐CT 검사 결과를 보니 정말 만만치 않은 강적중의 강적이다.

수술 D-day인 오늘 아침 회진 시간, 수술범위에 대하여 다시 간단히 설명하고 생길 수 있는 수술합병증에 대하여 부연설명을 한다.

"수술은 좀 커지만 잘 될 것입니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이렇게 림프절 전이가 많은 것을 다 긁어 내고 나면 부갑상선으로 들어가는 혈액순환이 좋지 않게 되어 손발이 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타민-D와 칼슘을 복용하면 되지만 참 많이 귀찮지요,

그 외 여러가지 문제되는 합병증이 있을 수 있지만 최대한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아이구 옆에 있는 예쁜 아가씨는 여친인가 보다"

"네, 교수님 잘 부탁드립니다"

"염려마셔, 두 사람 100년 해로 해야지..."

수술은 험난한 산악 행군이었지만 양쪽 옆목 림프절 청소술과 중앙 경부 림프절 청소술은 무난히 통과하였다.

근데 말이다. 미쳐 예상치 못한 거대한 암초가 오른쪽 갑상선에 버티고 있을 줄이야. 마의 삼각지점을 중심으로 암덩어리가 오른쪽 성대신경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으면서, 오른쪽 식도벽 근육과 한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른쪽 부갑상선은 흔적도 없이 없어져 버렸고. 휴~~. 이걸 어쩐다. 성대신경을 짜르면 목소리변화가 100% 오게 되어 있는데......어쩐다?

살려 보는데 까지 살려 보자. 근데 너무 무리다. 불가능하다. 성대신경을 살려두려면 피치 못하게 암의 일부분이 남게 된다. 안되겠다. 깨끗이 절제 해내고 성대 성형술을 해서 목소리를 유지시키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래서 성대신경, 식도벽, 부갑상선, 중앙림프절들을 몽땅 제거해 내고, 왼쪽 갑상선도 같이 제거해 내었다. 왼쪽 부갑상선과 성대신경은 그 자리 그대로 살려두고.....

"휴~, 이제는 음성클리닉에 연락해서 성대 성형술을 하도록 하지...."

그리하여 성대 성형술과 갑상선암 수술의 대장정이 무사히 끝난 것이다.

병실로 올라 가니 아침의 여친 대신에 환자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간호를 하고 있다.

수술내용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 특히 오른쪽 성대신경을 희생시키고 성대 성형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하여 설명한다.

"암이 너무 진행되어 있었어요. 앞으로 고용량 방사성 요드치료를 추가로 할 것입니다.

남자들은 참 미련하지요. 이렇게 되어도 별로 감지히지 못하고 있다가 암이 진행되고 나서야 병원을 찾게 되지요"

환자의 아버지가 설명한다.

"사실 그 전 부터 이상이 있었는데 3년전에 회사에 취직하고나서 회사일에 전념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맞아요. 남자들이 불쌍하지요. 갑상선암에서는 약한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이어라 라는 말이 있지요".

그나저나 요즘 왜 젊은 사람한테서 미만성 석회화 변종이 많이 생기노.이 환자는 일본에 10년동안 체류 했다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나. 그럼 일본 사람한테 미만성이 특별히 많더라는 보고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는 안잖아......

전 세계적으로 미만성 석회화 변종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에휴....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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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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