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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행 버스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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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금강산로 915번지에 있는 건어물 가게 ‘끝집 오징어’의 셔터는 7년째 내려져 있다. 골목 끝 660㎡ 매장으로 하루 100만원 매상도 올렸던 곳이다. 금강산 관광이 활기를 띠었던 때 얘기다. 주소에도 ‘금강산’이 들어 있을 정도로 이곳은 금강산 관광객의 길목이자 이종복(60) 사장의 삶의 터전이었다. 빚 보증을 잘못 섰던 그는 이곳을 마지막 동아줄 삼아 이를 악물고 재기해 자식 셋을 대학까지 보냈다.

 그러다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날벼락이었다. 바로 다음 날 정부가 관광을 중단시켰고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정부는 이 사장이 속한 금강산기업협회에 “곧 재개될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그렇게 7년을 보내며 신용불량자가 된 그는 셔터를 내리고 막노동을 했다. 7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금강산기업협회 기자회견의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그의 얼굴이 새까맣게 탄 까닭이다. 회견 후 만난 그는 “오늘 일당은 못 벌었지만 하고 싶었던 말을 하니 속은 시원하다”며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금강산기업협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하루빨리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5·24 제재 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촉구했다. 현대아산을 제외한 금강산 관광협력업체 49개로 구성된 협의회 대표들은 “지금까지 매출 손실액이 지난달 기준 8000억원에 이른다”며 “5·24 조치는 새로운 38선이 되어 남북을 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회생을 위한 피해지원법 제정이다. 금강산기업인협의회 이종흥 회장은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에서 일부 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등 역할을 했다고는 하지만 실효성이 없어 빚만 떠안게 됐다”며 “ 우리들의 회생을 위한 지원법을 국회에서 만들어 남측에서라도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대북 경협은 민감한 문제다. 정부 당국자는 “기업인들의 고충은 이해한다”면서도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연계하는 건 북한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셈”이라며 우려했다. 다른 외교·통일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정부가 (2010년 9월) 대(對) 이란 제재를 했을 때 관련 기업들은 불이익은 봤으나 감내했다”며 “사익뿐 아니라 국익도 고려해야 하기에 대북 경협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끝집 오징어의 이 사장이 꼭 전해 달라고 한 말이 있다. “(지난달 22일 한·일 관계 수교 50주년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께서 ‘과거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고 일본에 말씀하셨다”며 “그 말씀을 북에도 하실 수는 없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박왕자씨도, 이 사장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