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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보육자격고사 치른다고 보육의 질 높아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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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몇 달 치 임금을 받지 못해 곤란을 겪는다는 뉴스가 종종 나오죠. 이름만 교사지 내가 그들과 처지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기도 안산시의 한 민간어린이집에 근무하는 보육교사 A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15년째 보육교사로 일해온 그는 요즘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하루 10시간 이상 아이들을 돌보면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고, 커피 한 잔 마실 휴식시간은커녕 점심시간도 따로 없어요.” 1분 1초도 가만히 있지 않는 어린아이 10여 명을 홀로 돌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A씨와 동료 교사들은 화장실 가는 걸 오래 참아 방광염을 달고 산다. 그런 A씨가 한 달 월급으로 손에 쥐는 돈은 116만6000원. 시에서 지급하는 처우개선비·근무환경비 40만원을 합치면 최저임금(시간당 5580원)을 1000원쯤 웃도는 수준이다. 그는 “어린이집 학대 사건 이후로 뭔가 나아질까 기대했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교사 입장에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지만 더 버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전 국민을 경악하게 한 송도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을 계기로 보육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제언이 쏟아졌다. 당시 나온 수많은 대책 가운데 실제 현실화된 건 어린이집 폐쇄회로TV(CCTV) 설치 의무화 정도다. 정작 가장 절실한 문제로 지적됐던 보육교사 처우에 대해선 “개선하겠다”는 약속만 난무했지 진행된 게 별로 없다.

 지난 7일 새누리당과 정부의 당정회의에서 보육교사 양성제도 개편방안이 논의된다고 했을 때 기자는 가느다란 희망을 걸었다. 보육교사를 좀 더 엄격히 가려 뽑는 대신 보육교사에 대한 처우도 신경 써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당정은 보육교사가 되려면 국가자격시험을 보게 하자는 계획을 내놨다. 내년께 국가시험추진위원회를 꾸려 2018년에 시험을 도입하겠다는 로드맵도 함께 발표했다. 현재 보육교사의 상당수는 사이버교육이나 학점은행제를 통해 양성된다. 이런 시스템이 보육교사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이 있어 시험 도입 자체는 옳은 방향이라 본다.

 그러나 알맹이가 빠진 허전한 느낌이다. 보육교사 처우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함께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산 문제로 당장 눈에 보이는 걸 내놓기 힘들다면, 언제까지 어느 정도는 향상시키겠다는 의지라도 표현했어야 했다. 시험만 치른다고 교사들의 자긍심이 높아질 리 없다. 직업적인 매력과 비전을 함께 제시해야 자질 있는 인재들을 보육교사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