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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들의 나라 운명 어디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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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호 01면

부모 손에 이끌려 시위에 나선 어린 꼬마의 뺨에 쓰인 ‘OXI(반대)’가 이 아이의 미래를 지켜줄 것인가. 국민투표를 이틀 앞둔 3일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선 4만 명이 넘는 시민이 구제금융안 찬반 시위를 벌였다. [신화=뉴시스]

그리스 국민투표를 하루 앞둔 4일 무거운 공기가 아테네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이날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날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집회는 없었다. 대신 유권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채권단의 긴축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일부에서는 거친 말싸움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테네 시민들의 표정엔 나라 꼴이 왜 이렇게 됐는지 참담함이 가득했다.

그리스 구제금융안 수용 여부 오늘 국민투표 … 여론조사선 1%p 차이 박빙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에 대한 찬 반을 묻는 이번 국민투표는 사실상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잔류냐 탈퇴냐에 대한 선택이다. 동시에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정권에 대한 신임 투표다. 현 유로존 규정에 가입 요건은 있으나 탈퇴 규정은 없다. 한 번 유로존에 가입하면 탈퇴는 없다는 게 상식이었다.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선 이게 깨질 수도 있다. 유로존, 나아가 유럽연합(EU)의 향방이 그리스 유권자의 손에 달린 셈이다.

 투표를 앞두고 발표된 마지막 여론조사에선 찬반이 초박빙세로 드러났다.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가 그리스 성인 1001명에게 설문해 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긴축안 찬성이 44%, 반대가 43%였다. 오차범위는 3.1%포인트이므로 누가 앞선다고 하기 어려운 형세다.

 유로존 잔류 의사를 묻는 질문엔 ‘매우 동의’(58%)하거나 ‘약간 동의’(13%)한다는 답변이 대다수였다.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까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블룸버그통신이 마케도니아대학에 의뢰한 여론조사와 그리스 일간 아브기의 조사에서도 각각 반대와 찬성이 43%, 42.5%를 기록했다. 그리스 일간 에스노스의 조사에선 찬성이 44.8%로 반대(43.4%)를 1.4%포인트 앞섰다. 이들 조사에서 ‘미정’이란 답변은 10% 안팎이었다. 이들 부동층이 투표용지 기표란의 위쪽(반대)과 아래쪽(찬성) 중 어디를 찍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릴 판이다.

 양쪽에서 막판 표심 잡기를 위한 대대적 홍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자본 통제 이후 더 나빠진 경제상황을 두고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형식이었다. 그리스 은행연합회는 국민투표 다음 날인 6일까지는 자금 사정에 문제가 없겠지만 그 이후엔 현금이 고갈될 수도 있다고 내비쳤다. 7일은 은행 영업 재개일이다.

 루카 카첼리 그리스 은행연합회 회장은 3일 “그 이후에는 유럽중앙은행(ECB) 결정에 달렸다”며 “지금 우리가 가진 유동성 규모는 약 10억 유로”라고 말했다. 7일 영업 재개와 자본통제 조치 해제가 이뤄진 후 ECB의 긴급유동성제한(ELA) 증액이 없을 경우 현금이 고갈될 수 있다는 경고다. 채권단의 긴축안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 은행들이 8000유로(약 1000만원) 이상의 예금자에게 최소 30%의 손해를 부담시키는 방안(베일인·Bail-in)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ECB가 그리스 은행에 대해 파산을 선언하거나 긴급 자금지원을 끊어버리면 베일인이 도입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그리스 은행의 베일인에 대한 FT 보도는 악의적 루머”라고 반박했다.

 아테네에선 3일 밤 마지막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다. 양측 집회장소 간 거리는 800m밖에 안 됐지만, 인식의 간격은 수십㎞에 이르기라도 하듯 커 보였다. 신타그마 광장을 차지한 건 긴축안에 반대하는 시리자 주도의 친(親)정부 시위대였다. 오후 6시부터 사람이 몰렸다. 광장은 물론 주변 도로까지 가득 메웠다.

▶4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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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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