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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마케팅(16) 공포 마케팅의 명암] 두려움 자극하라, 그러면 팔린다…메르스때 마스크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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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구강청결제 리스테린은 수치심을 마케팅으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진은 ‘남자친구가 당신에게 키스하지 않은 이유’ ‘당신이 인기가 없는 이유’ 등 이성관계에서 구취 때문에 창피를 당하는 시리즈 내용의 광고.

2006년 개봉한 영화 '수퍼맨 리턴즈(Superman Returns)'는 지구에서 사라졌던 수퍼맨이 5년 만에 돌아와 악당을 물리치는 활약을 그렸다. 신문사 '데일리 플래닛’의 여기자 로이스는 한때 수퍼맨과 사랑을 나누던 사이. 수퍼맨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편집장은 로이스에게 특종 기사를 써내라고 다그치며 말한다. “로이스, 신문이 팔리도록 하는 건 단 세 개야. 비극과 섹스, 그리고 수퍼맨(Lois, only three things sell papers: tragedy, sex, and Superman).”

만약 지금 수퍼맨이 다시 돌아온다면 편집장은 단어 하나를 바꿨을 듯하다. 지금은 섹스보다 ‘공포’가 더 잘 팔리는 시대다. 지난 한달 동안 메르스로 인한 공포는 사람들의 행동과 생활패턴을 바꾸고 소비시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스크, 손 세정제 품귀현상이 나타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영화관, 대형마트, 쇼핑센터에는 고객 발길이 끊겼다. 외국인 관광객 수도 대폭 줄었다. 그 와중에 소비자들의 공포심을 이용한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포 소구(Fear appeal) 마케팅은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고통, 손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강조하며 소비자를 설득하는 방법이다. 이상적인 모습, 유쾌한 결과를 기대하도록 하는 일반적인 마케팅과 달리 불행을 예방하거나 부정적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상품을 소개하고 구매를 권유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자산가들 사이에 인기를 끈 군용 자동차 브랜드 허머의 전시장.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공포 상황은 기업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를 제공한다. 2001년 9·11 테러 발발 이후 외부생활에 두려움을 느끼는 미국인들이 급증하면서 뉴욕의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민간인용 군용 자동차 허머(Hummer)가 인기를 끌었다. 허머는 걸프전에서 사용된 다목적 지프차 험비(HMMWV)를 일반 도로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차량이다. 테러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차단해주는 보호막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허머가 최고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내 허머 판매량은 2002년 2만 대, 2003년 3만6000대로 급증했다. GM은 허머의 전투적이고 강인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들여 1450개 쇼룸을 군대 막사 모양으로 개조했다. 초고가에 과격한 디자인이 부담스러운 일반 소비자들은 좀 더 무난하면서도 세단보다는 차체가 높고 튼튼한 차를 선택했다. 그 결과 미국 자동차 판매의 20% 이상을 SUV가 차지하는, 당시로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공포 확산기는 시장 판도 바꿀 기회

공포와 불안은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도 한다. 1993년 한국에서는 조선맥주의 하이트가 큰 호응을 얻으며 히트했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으로 수질오염 이슈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위생에 대한 민감도가 드높았던 시기였다. ‘지하 150m 암반에서 끌어올린 천연지하수로 만든 맥주’라는 슬로건으로 깨끗함을 강조한 하이트는 수질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오비맥주의 1위 자리를 빼앗는 성과를 거뒀다.

금연, 안전벨트 착용 등 바람직한 행동을 권장할 때도 공포심 자극은 효과적이다.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는 청량음료의 유해 수준이 담배와 맞먹는다고 판단해 콜라, 사이다에 비만, 충치, 당뇨의 위험을 알리는 경고 메시지를 삽입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 지나치게 자극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금연 캠페인에서 혐오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폐암 환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연관성이 줄어들어 ‘설마 나한테는 저런 일이 생기지 않겠지’라는 자기 방어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넣기로 한 후 후보로 제시된 일부 이미지의 혐오 수준이 너무 높아 흡연을 줄이기보다 대중적인 불쾌감만 높이는 것은 아닐지 우려를 낳고 있다.

타인의 평가나 사회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가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구강청결제 리스테린(Listerine)은 소비자의 ‘수치심’을 가장 잘 활용한 브랜드로 꼽힌다. 1879년 출시된 리스테린은 원래 수술대나 바닥을 닦는 강력 세제로 사용되었다. 이후 입 속 세균과 냄새 제거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치과의사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1914년 구강청결 제품으로 재등장했다. 문제는 그 당시 사람들은 몸이나 입에서 나는 악취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냄새 제거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스테린으로서는 대중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먼저 입에서 나는 ‘나쁜 냄새(bad breath)’를 ‘구취(Halitosis)’라는 의학 용어로 대체했다. 용기 라벨에도 ‘구취 제거’라는 명확한 가치를 제시했다. 또 사회생활, 특히 이성과의 관계에서 입 냄새 때문에 창피를 당하는 스토리의 시리즈 광고를 제작해 ‘구취 캠페인’을 실시했다. ‘사람들이 뒤에서 당신에 대해 수군거리고 있답니다.’, ‘그 사람이 굿바이 키스를 하지 않았다고요?’라며 입 냄새의 불쾌함과 심각성을 알려주는 식이다. 사람들은 점점 냄새에 민감해졌고, 혹시 자신이 구취 때문에 외면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리스테린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리스테린은 구강청결제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공포·불확실성·의혹 조장하는 FUD 전략

경쟁이 치열한 기업 현장이나 정치판에서는 공포, 불확실성, 의혹을 조장하는 FUD(Fear, Uncertainty, and Doubt) 전략이 종종 사용된다. 경쟁자가 선택될 경우 발생 가능한 공포 상황을 암시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형성해 소비자나 유권자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전략이다.

데이지 꽃잎을 떼고 있던 소녀가 핵폭발을 목격하는 광고 장면. 이 영상은 1964년 대선에서 린드 존슨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64년 미국 대선 당시 재선에 도전한 린든 존슨 대통령이 보수파의 지지를 얻으며 득세하던 배리 골드워터 후보를 겨냥해 제작한 광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광고 속에서는 어린 소녀가 데이지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고 있다. 마지막 꽃잎이 떨어질 때, 소녀는 갑자기 겁먹은 표정을 짓는다. 놀란 소녀의 눈동자가 클로즈업되고 거기에는 핵폭발로 인해 피어오르는 커다란 버섯구름이 비춰진다. 그리고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암흑 속으로 빠질 것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라이벌 골드워터의 이름은 전혀 거론되지 않지만, 광고의 목표는 확실했다. 핵무기 실험금지 조약의 비준을 반대하고 소련에 대한 핵공격을 지지했던 골드워터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었다. ‘데이지 걸(Daisy girl)’광고는 단 한번 방영되었지만 유권자들에게 공포와 충격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존슨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재선에 성공하는 데 결정적 계기를 만든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기업 경쟁에서 FUD 전략은 주로 IT업계 대형 브랜드들이 경쟁사로의 고객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다. 시스템 불안정성, 보안 취약성, 호환 불가능성 등 경쟁 상품에 관한 부정적 정보를 암암리에 퍼뜨리고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해 고객들의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게 하고 발목을 잡는 식이다.

최근 한국 맥주시장에서는 1, 2위 제품의 유해성에 대한 소문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소비자의 공포를 담보로 한 비방전은 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감을 높여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결국에는 해외기업 같은 제3자가 이득을 가져가는 공허한 루즈-루즈(lose-lose) 게임으로 끝나기 쉽다. 또 이런 식으로 붙잡힌 고객이 진정한 충성고객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암울한 현실 극복할 동반자 이미지 중요

공포를 느끼는 순간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상대가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만으로 마음이 진정되고 자연스럽게 신뢰와 친밀감이 형성된다. 공포 상황을 함께 겪은 소비자와 브랜드도 특별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실제로 액션, 코미디, 호러같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본 소비자 중 호러물을 본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주스, 감자칩 등 주변에 있던 제품에 대한 애착과 선호도 수준이 훨씬 더 높아졌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흥분감, 유쾌함, 슬픔보다 공포, 두려움을 나눈 브랜드에게 더 강한 연결감과 애정을 느끼게 된다는 의미다.
공포 마케팅은 히트상품을 만들고 상징적인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묘수가 될 수 있지만 불안감만 조성하고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히는 악수가 된다. 비극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수퍼맨이 될 수도, 또 다른 비극을 낳는 악당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불안과 공포를 일거에 제거하는 영웅을 꿈꾸기에 앞서 암울한 시기를 함께 극복해가는 일상 속 동반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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