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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집안” “개XX 저거” … 난장판 된 새누리 최고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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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왼쪽 둘째)이 2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대대표(왼쪽 셋째)의 사퇴를 거듭 촉구하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를 중단하고 자리를 떠났다. 김 최고위원이 회의실을 나서는 김 대표에게 계속 항의하자 서청원 최고위원(뒷모습)이 말리고 있다. 왼쪽은 김을동 최고위원. [뉴시스]
허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김태호 최고위원=“유승민 원내대표에게 드리는 마지막 고언이 되길 바란다. 콩가루 집안이 잘되는 걸 못 봤다.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

 ▶원유철 정책위의장=“유 원내대표에게 그만두라고 계속 얘기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김 최고위원=“한 말씀 더 드리겠다.”

 ▶김무성 대표=“그만해. 회의 끝내겠다.”(자리에서 일어남)

 ▶김 최고위원=“대표님!”

 ▶김 대표=“회의 끝내!”

 ▶김 최고위원=“대표님,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김 대표=“마음대로 해라!”

 ▶이인제 최고위원=“김 최고위원, 고정해.”

 ▶김학용 대표 비서실장=“에이, XX야. 그만해!”

 새누리당 지도부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국회 당 대표실에 모여 최고위원회의를 연다. 말 그대로 당의 최고 의결·집행기구다. 그런데 2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는 이들에게 집권여당의 최고 의결·집행을 맡겨도 될지 의심이 생길 정도로 볼썽사나운 풍경을 연출했다.

 김 최고위원은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왼쪽에 앉아 있던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고 김 대표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회의를 중단시키며 박차고 일어났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한다는 점에선 같은 편인 서청원 최고위원까지 김 최고위원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말렸지만 소용 없었다. 그러자 김 대표를 뒤따라 나가던 김 대표 비서실장은 혼잣말로 “개XX, 저거”라고 했다. 난장판을 지켜보던 김을동 최고위원과 정미경·권은희 의원 등 여성 의원 3명은 서로 의지한 채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입을 다문 채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유 원내대표는 이런 모습을 다 지켜본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콩가루 집안이 잘되는 걸 못 봤다”는 김 최고위원의 발언에서 시작된 공개 회의석상의 사달이 정말로 ‘콩가루 집안’의 모습으로 귀결되는 순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시작된 여권의 내분은 갈수록 진흙탕 싸움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의 정치” “심판”과 같은 강한 비판을 했다는 게 알려진 지 3시간 만에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 때만 해도 의원들의 다툼은 예상보다 점잖았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당장 사퇴하지 않고 버티면서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은 점차 사생결단으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당정협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한 달 전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예고대로 지난 1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논의하는 당정협의에 당을 대표하는 유 원내대표는 참석하지 못했다.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 새누리당 내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은 마치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살얼음판과 같다. 실제로 김 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가 파행으로 끝난 뒤 서울역에서 열린 ‘부산 관광 로드쇼’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을 파국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다루듯 노심초사하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유 원내대표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자는 마음이고 유 원내대표도 그런 의사를 밝혔는데 그걸 못 참고 연일 그렇게 공격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했다. 아쉬움과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김 대표는 올해 하반기가 시작되는 2일 “올 상반기를 돌아보니 우리 정치권이 국민에게 박수보다는 지탄을 받는 일이 훨씬 많았던 것 같아서 책임 있는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면목이 없다”고 했다.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최고위원회의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사과가 갖는 효력은 20분을 가지 못했다.

 2일 새누리당 최고 의결·집행기구에서 벌어진 반목과 갈등의 정치를 보며 걱정이 된다. 내년 상반기에도 “면목이 없다”는 사과를 국민으로서 다시 받을까 봐.

허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bim@joongang.co.kr

[현장에서] 유승민 사퇴 놓고 욕설·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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