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헤지펀드가 왜 삼성물산에 간섭하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Q 요즘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한다는 보도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헤지펀드가 무엇인데 기업의 의사결정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가요. 또 헤지펀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지먼트는 지난달 4일 삼성물산의 지분을 7.12% 보유했다고 공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합병이 삼성물산의 가치를 과소 평가했고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이렇게 합병을 하면 삼성물산 주주가 손해를 본다는 거지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1대0.35이거든요. 제일모직의 주가를 100이라고 하면 제일모직 주가는 35원으로 쳐주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엘리엇은 “35원은 너무 적다.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고수익 위해 신흥국 금융시장 공격도

 헤지펀드는 삼성물산 주식 같은 주식뿐 아니라 채권·실물자산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입니다. 많은 사람의 소액투자자를 상대로 돈을 모으는 공모펀드와 달리 헤지펀드는 적은 규모의 고액투자자의 돈으로 투자를 하는 사모펀드입니다. 사적 계약에 의해 투자자가 돈을 맡기면 전문 운용회사가 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운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모펀드보다 감독당국의 규제도 덜 받지요. 투자자금이 어디서 나왔는지 베일에 가려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격이 이렇다 보니 헤지펀드는 어떤 상황에서든 높은 수익률을 올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 복잡한 투자 기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세금을 덜 내는 조세회피지역에 거점을 두는 경우가 많아요. 조금이라도 세금을 덜 내야 수익률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상당수 헤지펀드가 전형적인 단기투자를 하지요. 투자 내용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Hedge’는 ‘울타리’ ‘위험에 대비하다(위험을 분산시키다)’ 등의 뜻이지만 요즘엔 사실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를 할 때가 많아요. 실제 뜻과 정반대의 투자 행태를 보이기도 하지요. 헤지펀드는 단기 투기자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헤지펀드는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기도 하고 신흥국 경제 시스템을 바로잡는다며 신흥국 금융시장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신흥국 경제가 빈사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번에 삼성물산의 지분을 매집한 엘리엇은 ‘주주 행동주의(Activist Fund)’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헤지펀드입니다. 행동주의 투자자는 단순히 지분 투자를 통한 수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특정 기업의 지분을 산 뒤 경영 전략 변경,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편 등을 요구(경영 참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가를 끌어올립니다. 매각·합병과 같은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등 주주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뜻이지요. 기업 경영에 사사건건 간섭하기 때문에 기업에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국가를 대상으로 투자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 세를 불린 뒤 아시아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지요.

 엘리엇의 아르헨티나 국채 투자는 헤지펀드 업계에선 ‘세기의 국채 투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엔 재앙과도 같은 투자였습니다. 엘리엇은 2000년부터 아르헨티나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사들였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국가 신용도가 떨어져 채권값이 매우 낮았던 때였지요. 자금난에 시달린 아르헨티나는 2001년 결국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습니다. 그런 다음 2005년부터 아르헨티나 국채 등을 소유한 채권자에게 아르헨티나 국채 1달러 당 30센트에 교환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개인 간의 거래처럼 나라도 빚을 냈다가 갚을 돈이 없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국가는 디폴트를 선언하고 빚을 깎아달라고 채권자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아르헨티나도 빚 100원을 30원으로 깎아달라고 한 겁니다.

2~3년간 치밀한 전략 … 소송도 불사

 하지만 엘리엇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으로 디폴트를 선언하고 빚을 깎아달라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행태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던 거죠. 빚을 100% 모두 갚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이는 소송으로 번졌고 법원은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무려 16억달러를 엘리엇에게 상환해야 합니다. 결국 지난해부터 아르헨티나는 다시 재정 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심지어 엘리엇은 아르헨티나와의 소송 과정에서 이 나라의 군함 소유권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군함이 항해하는 중엔 법을 집행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엘리엇은 투자금을 되찾겠다며 2012년 군함의 항로를 예의주시하다가 아프리카 가나에 정박하자 바로 압류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이 군함의 가치는 1000만~1500만달러로 추정됐습니다.

 이렇게 헤지펀드는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소송도 불사하고 국내법 뿐만 아니라 국제법도 최대한 활용합니다. 보통 2~3년간 특정 기업을 연구해 치밀한 전략을 수립한 다음 지분을 매입해 주주권을 행사합니다. 이런 치밀함과 집요함 덕에 운용자산이 29조원에 달하는 엘리엇은 창립 이후 연평균 14.6%라는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지요.

 기업 인수·합병(M&A) 거래에서 소액주주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문제 제기해 더 높은 가격을 받아내는 것도 엘리엇이 즐겨 쓰는 투자 기법입니다. 2003년 미국 P&G가 독일 웰라를 인수하면서 제시한 주가가 부당하다며 법적 분쟁을 벌여 주가를 높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2005년에도 미국 유통업체 샵코를 한 사모투자펀드(PEF)에 매각하는 거래에 반대해 샵코 지분 가격을 주당 24달러에서 29달러로 올려받았지요. 2006년에는 인력 컨설팅업체 아데코가 독일기업 DIS를 인수해 비상장사로 만들려고 하자 이에 맞서서 지분 가격을 주당 54.5유로에서 113유로로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2013년엔 미국 에너지기업 헤스에 대해 경영 참여를 선언한 뒤 주총에서 표 대결을 하기도 했습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대해서도 이미 짜인 각본이 있는 듯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요. 지난달 4일 삼성물산에 주주제안을 통해 현물배당이 가능하도록 정관 변경을 요구했습니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배당 형태로 주주에게 줄 수 있도록 정관을 바꾸라는 겁니다. 지금 지배구조 개편을 하고 있는 삼성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지요. 지난달 5일에는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요 주주에 서한을 보내 “이번 합병이 주주에게 불합리한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어 반대해야 한다”며 세몰이에 나섰습니다.

SK 공격했던 소버린, 9000억 시세차익

 삼성물산에 대한 외국계 펀드의 압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2004년에도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가 2003년 11월부터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해 5%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이 때 헤르메스는 주식매입 목적을 ‘투자’라고 밝혔지만 삼성물산 경영에 간섭하는 등 적대적 인수·합병(M&A)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쳤지요.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우선주 소각 등을 요구하다가 지분을 돌연 처분해 380억원의 차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또 SK는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의 공격을 받아 1조원가량을 투입해 어렵사리 경영권을 방어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소버린은 SK주식을 15% 가까이 매집한 뒤 SK그룹을 상대로 경영진 교체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버린은 90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지요.

 이렇게 한국의 대표 기업이 외국 금융사의 먹잇감이 되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약한 지배구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가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지배구조를 갖추고 지배구조와 사업의 취약성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거고요.

김창규 기자 teente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