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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해빙까진 아베 담화 등 곳곳 암초 … 과민반응은 금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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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호 08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지난 22일 주일 한국대사관이 주최한 기념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한·일 관계가 해빙무드에 들어갔다고 봐도 되나.
 ▶호사카 유지=이번에 수교 50주년 행사도 그냥 넘어갔더라면 양국 정부 모두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막바지에 결단을 내린 것 같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된다.
 ▶양기호=한국 측이 적극적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문제는 일본이 이에 답해줄 수 있느냐다. 일본은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데 비해 한국의 대응이 너무 갑자기 바뀌어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한국 언론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과 관련, 좋은 타협 사례를 남겨 긍정적인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암초는 많지만 해결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의 싹이 튼 것이다.
 ▶이원덕=지난 5월부터 양국 재무·통상·국방·외교 장관회담이 열려 신호탄이 쏘아졌다. 미국이 한·일 역사의식 대립에 우려하고 있고 박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대일 외교는 이제 정상화 쪽으로 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문가 진단] 분위기 바뀌는 한일 관계

 -왜 갑자기 우리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보나.
 ▶양기호=박근혜 정부 출범 후 2년 반 동안 공식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지금 실마리를 만들지 못하면 안 되는 상황이다. 내년 4월 총선과 이어지는 대선 국면을 감안한다면 올해 안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1차 합의가 나와야 한다.
 ▶이원덕=경제적 측면에서의 요구도 컸던 것 같다. 무역투자와 관광, 인적 교류가 위축되면서 주름살이 깊어져 관계 복원 필요성이 우리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올해 하반기가 골든타임이고, 이때를 놓치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전략적으로 수립됐다고 본다.
 ▶호사카=지난해 3월 핵안보 정상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이 만난 이후부터 한국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 쪽으로 움직여 왔다.

 -아베 정부는 급할 것이 없다는 입장인가.
 ▶이원덕=아베 정부는 미·일 동맹을 기초로 인도와 호주를 끌어들여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은 효용은 있지만 핵심고리는 아니라고 본다. 좋든 싫든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면 한국은 저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방향 전환만 해주면 일본이 우리와의 관계개선을 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다.
 ▶호사카=일본이 아직 한국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은 경제다. 아베노믹스가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아베 정부의 목표 중 하나가 한국 경제를 완전히 압도하는 것이다. 한국이 미루고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일본과의 관계가 더 좋아질 것이다.
 ▶양기호=역사수정주의는 아베 총리가 워낙 오랫동안 굳혀온 신념이라 위안부 문제에서 양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8월에 나올 아베 담화도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역사인식 문제에서 일본 내 반발이 상당히 강해 변수가 될 수 있다.

 -위안부 문제, 8월 아베 담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호사카=아무리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그것을 풀어나가는 쪽으로 자세를 바꿔 나가야 한다. 대립이나 모순을 안고 가면서도 협력방안을 곧바로 만들겠다는 그런 식으로 가야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양기호=7월 말 일본의 ‘방위백서’가 나오면 또다시 격랑이 일 수 있다. 아베 담화로 8월 냉각관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 1차 합의안이 나와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개선 방법이다. 연내에 위안부 문제 합의 초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관계개선이 힘들어질 것이다. ‘방위백서’나 아베 담화, 야스쿠니 대규모 참배 등에 대해 한국 정부는 반응은 하되 대결 모드로 가서는 안 된다. 일단은 방향이 긍정적으로 선회했기 때문에 이를 일관성 있게 가져가야 한다.
 ▶이원덕=아베 담화는 아베라고 하는 정치인의 역사관 내지 정치 신념을 피력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대 수준이 높아서는 안 될 것이다. 아베 담화를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의식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퇴행적 역사인식은 미국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베가 쉽사리 타협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작다.

 -우리가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계속 요구해야 하나.
 ▶양기호=한·일 관계에는 안보협력이나 대북공조, 경제교류, 시민사회 등 다양한 측면이 있다. 이것을 위안부 문제 자체로 축소시켜 1차원화하는 것은 문제다. 냉전도 끝나고 진영논리도 없어졌다.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 대결을 하면서도 협력을 할 수 있다. 한국은 지금 도덕외교에 매몰됐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하나도 진전된 게 없다. 성과도 없고 청사진도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외교위기론이 나온다. 신중함·신뢰, 이런 걸 가지고 주변 국가와의 외교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원덕=역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속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문제는 역사외교에 다른 중요한 외교가 매몰됐다는 것이다. 역사라는 전제조건을 달아 입구론(入口論)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 문제다.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정부가 앞장설 게 아니고 학계나 시민사회가 주체가 돼야 한다. 역사원리주의 외교가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더욱이 동북아 위치 속에서 보면 한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 나름의 주체적인 전략 구상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일본 변수에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안 된다.
 ▶양기호=지금과 같은 복잡한 상황은 외교 전문가들이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은 한 발 뒤로 물러서 이들에게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생존전략을 토론하는 문화와 시스템이 없다. 아예 처음부터 새출발하는 의미에서 외교라인 일신도 고려해볼 만하다. 미국·일본·북한에 새로운 신호를 줄 수 있다.
 ▶호사카=국내적 가치나 도덕적 기준을 그대로 외교에 사용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다. 국익을 확대할 수 있는 외교적 표현보다는 원색적 비난이 난무한다. 그런 식으로는 대립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국적인 도덕성을 일본에 전면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되도록 가치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국익 중심의 외교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일 정상회담 연내 개최 가능성은.
 ▶이원덕=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 참석이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한·중·일 정상회의 분위기가 잡히면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양기호=중국을 설득해 한·중·일 정상회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 자리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아베 담화 여파로 아베 총리가 9월 베이징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도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박 대통령이 다시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11월 G20 정상회의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호사카=어려움이 있어도 이제 반드시 해야 한다. 현재까지 위안부 문제에 올인한 한국 외교가 비정상적이다. 거기서 다 해결할 필요는 없고 대화 채널은 항상 가동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한·일 관계가 가까워지면 중국이 견제에 나설 수도 있지 않나.
 ▶호사카=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어 중국의 견제가 들어올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의 어려움이 있다.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중국을 설득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소극적으로 외면하는 외교 태도를 가지면 안 된다. 정확하게 말하고 주체적인 외교 태도를 가져야 한다.
 ▶양기호=중국이 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주 관심사다. 한국이나 일본 변수는 부차적이라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원덕=한·일 관계나 동북아 정세를 19세기식 세력균형 관점에서 보는 데서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합적인 네트워크 사고를 해야 한다. 한·일이 가까워지면 중국이 반발할 거라든지 한·중 관계 때문에 일본이 불편하다든지 하는 것은 세력균형적인 발상이다. 한·중·일과 한·미·일 관계를 동시에 가동하는 게 가능하다. 그 속에서 북한 문제도 풀어갈 수 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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