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차줌마 “2류와 3류 사이 줄타기 잘하는 배우가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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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화정’에서 광해를 연기하는 차승원. 임진왜란 당시 세자에 책봉됐으나 영창대군의 탄생으로 자리를 위협받았고, 왕위에 올라서는 햇수로 16년 만에 인조반정으로 폐위되는 비운의 왕이다. [사진 김종학프로덕션]
25일 촬영장에 함께한 차승원(광해·왼쪽)·이연희(정명공주·가운데)·김재원(능양군·인조). [사진 MBC]

“레디, 액션!” 주위가 일순 조용해지며 짹짹 대는 새 소리만 유독 또렷하다. 그 자연음을 깨고 차승원(45)이 입을 연다. “능양군, 실로 오랜만이로구나.” 김재원(34)이 말을 받는다. “예 전하, 그리하옵니다. 참으로 뵙기가 어렵지 않았사옵니까. 제 아우가 억울하게 죽었을 때도 말입니다.” 차승원의 언성이 높아진다. “뭐라, 억울하게?”

 25일 경기도 용인의 야외세트장. 조선시대 숙정문을 재현한 세트 앞에서 MBC 50부작 드라마 ‘화정’(월·화 오후 10시)의 촬영이 한창이다. 이날 촬영은 방송 20회를 넘기며 새로 등장한 능양군, 즉 훗날의 인조가 숙부이자 머잖아 폐위될 현재의 임금 광해와 대면하는 순간이다. 광해의 배다른 여동생이자 숙종 때까지 천수를 누린 정명공주(이연희)가 이들을 지켜보면서 ‘화정’의 세 중심인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광해 역의 차승원은 촬영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명나라의 파병 요청에 찬성한 세력이 득세하고 조만간 인조반정이 일어날 것”이라 말했다. 극 중에서 광해는 귀양을 가며 28회쯤에 퇴장할 예정이다. 차승원은 “처음에 생각했던 광해의 모습이 지금까지 온전히 그려진 것 같다”며 “이런저런 사료를 뒤적이며 광해가 참 고립된 상황에서 무척 외로웠던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앞서 ‘삼시세끼-어촌편’(tvN)에서 빼어난 음식솜씨로 ‘차줌마’(차승원+아줌마)란 별명과 함께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았던 그는 ‘화정’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180도 다른 비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이런 변신에 대해 “흔히 배우를 두고 니(2)마이, 싼(3)마이 하는데 내가 지향하는 건 딱 2.5 배우”라 말했다. 일본어에서 유래한 니마이와 싼마이는 드라마 등에서는 흔히 각각 2류와 3류, 또는 극의 흐름에서 말수가 적거나 좀 묵직한 역할과 반대로 쾌활하고 가벼운 역할을 뜻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차승원은 “니마이가 됐다, 싼마이가 되는 줄타기를 할 수 있는 배우, 우스갯소리로 광고모델로 치면 농약에서 자동차까지 다 할 수 있는 배우이고 싶다”고 말했다.

 광해는 드라마의 무게중심에선 사라지지만 역사 속에선 폐위 뒤에도 18년을 더 살았다. 차승원은 “폐위되는 와중에 아들과 며느리가, 그리고 아내도 먼저 죽었는데 광해는 66세까지 살았다”며 “그 사이 또 다른 난들이 벌어지는데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인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청나라가 그랬듯 광해도 다시 왕이 되고 싶어했는지 궁금했다”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이내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제작진이) 제 유배지를 이미 섭외를 해놓았다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고 농을 쳤다.

 ‘화정’은 초반부터 줄곧 시청률 10~11%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상파 월·화드라마 중 1위이긴 해도 MBC가 ‘창사특집’으로 만든 사극으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MBC 창사특집 사극은 앞서 ‘대장금’ ‘동이’ ‘이산’ ‘선덕여왕’ 등 굵직한 히트작이 여럿 나왔다. 광해와 함께 그동안 드라마의 중심을 이뤄온 정명공주, 드라마에 이제 막 가세한 능양군이자 인조의 새로운 갈등과 활약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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