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500만원어치 샀어요 … 함께 메르스 불황 이겨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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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은 71세의 나이에도 ‘메르스 불황’ 극복을 위해 내수 살리기 운동에 나서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건강관리 비결을 물었더니 “아침에 일어나면 10분 이상 땀날 정도로 스트레칭을 해 온 몸을 쫙 푼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여성 리더십은 위기일수록 빛을 발하곤 한다. 조선 정조 때 대기근이 닥치자 남성 갑부들보다 많은 쌀을 쾌척해 백성의 칭송을 받은 거상 김만덕(1739~1812)이 그랬다. ‘메르스 불황’을 맞은 한국 경제계에서 김만덕을 꼽으라면 이민재(71·사진)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일 것이다. 이 회장은 24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여성 경영자는 유통·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내수가 직격탄을 맞은 지금이야말로 이들이 나서야 할 ‘골든타임’”이라며 “2100여개 회원사를 독려해 메르스 불황 타개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최근 그가 팔을 걷어붙인 건 ‘선물 나누기’ 캠페인이다. 업무상 만나기 어려운 사업 파트너나 소홀했던 친지에게 선물을 보내자는 취지다. 당장 그부터 지난 22일 메르스 피해를 입은 전남 고흥의 블루베리 농장에 들렀다. 블루베리 500만원어치를 구입해 협회 직원들에게 돌렸다. 그는 “최근 중앙일보와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가 잇달아 제안한 내용처럼 회원사에게 하반기에 살 물건을 앞당겨 구매하고 국내 휴가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는 등 내수 살리기에 앞장서라고 독려중”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이전에도 그의 나눔은 폭이 넓었다. 그는 평화 통일을 위한 민간단체인 ‘1090 평화와 통일운동’에서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릴레이 캠페인을 벌여 10개 회원사가 동참했다. 그는 “회사를 키울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작은 회사지만 탄탄한 편이다.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부쩍 들어 나눔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작은 회사’가 엠슨이다. 글로벌 제지업체에서 수입한 인쇄용지와 우유팩·벽지·박스포장재 같은 특수용지를 국내로 들여오거나 유럽·동남아 등에 수출하는 무역회사다. 그가 1987년 창업한 광림무역상사가 모태다. 서울여상을 졸업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던 그는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실직하자 당시 43세의 나이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외국계 제약사에 다니던 친척을 통해 지인을 꼬리물듯 소개받는 식으로 영국의 특수용지 제작업체 거래선을 뚫었다. 당시 드물었던 고급 색종이·도화지를 국내로 들여왔다. 그는 “업계에 ‘대찬 여사장이 있는데 믿을 만 하다’는 입소문이 났다. 덕분에 조폐공사에 수표용지를 독점 공급하며 회사가 급성장했다”고 설명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위기도 맞았다. 이를 극복한 것도 ‘신뢰’였다. 우유팩을 공급하던 서울우유에서 “축산사료 수입업체들이 농간을 부리는데 당신이 뛰어들면 잘할 것 같다”며 미국 거래선을 추천해줬다. 덕분에 새로운 활로를 찾아 매출이 크게 뛰었다. 직원은 18명이지만 지난해 매출 268억원(영업이익 7억원)을 올린 ‘강소기업’이 됐다. 그는 “남성 영업사원처럼 끈적끈적한 접대는 안 했지만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 기업과 거래하며 납기일·납품을 칼같이 지키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몸에 밴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여성 경영자들도 그와 같은 성향이 많다고 했다.

 “여성 기업인들은 투기·모험을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신뢰를 생명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죠. 답답할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여성에게 유리한 창업 환경이 펼쳐졌다고도 했다. 인터넷 덕분이다. 그는 “사람 만나는 게 시장조사의 전부였던 과거엔 여성이 창업에 불리했다. 하지만 최근엔 인터넷이 발달해 그런 제약이 사라졌다”며 “잘 나가는 인터넷 쇼핑몰 사장은 다 여성이다. 인터넷에 익숙한 여성이 창업하기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창업 노하우로 ▶잘할 수 있는 업종·분야를 선택하고 ▶시장조사를 철저히 하고 ▶창업후 3년은 버틸 수 있는 자본을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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