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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물결에 휩쓸린 중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중공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개혁은 상당히 광범하게 중공사회에 번져나가고 있다.
다음은 3년동안 북경주재특파원활동을 마치고 최근 귀국한 미국의 「크리스토퍼·렌」기자가 중공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혁의 실상을 소개한 기사를 간추린 것이다. 【편칩자주】
최근중공정부는 『85년부터 관청에서 낮잠시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놀라운 발표를 했다. 지금까지 중공의 관청에서는 점심시간을 2시간씩 허용, 사무실안에서 시에스터를 즐기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 되었었다. 중공정부는 앞으로 점심시간이 1시간으로 한정된다고 발표한 것이다.
중공지도자들이 이처럼 오랜 관습을 타파하려 드는것은 중공당이 6년전 등소평의 경제개혁을 승인한 이래 얼마나 큰 변화가 이루어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공도시의 모습은 근년들어 활기를 드러내고 있다. 거리에는 TV·녹음기·카메라등을 선전하는 포스터가 나붙어 있다. 「3년은 새옷, 다음 3년은 헌옷, 다음 3년은 기워서 입는다」던 과거의 검소한 옷차림은 색깔든 새옷과 블루진및 서양식 양복으로 바꿔어가고 있다.
청년 공산연맹 관리인 「류·얀동」은 유행옷을 입는것은 생활수준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합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부르좌 작품이라고 비난받은 춤은 젊은 남녀가 만나는 기회가 된다는 이유로 당이 권장하고 있다. 모택동은 도박을 금했으나 요즘 중공의 일부 경기장에서는 「젊은이들의 생활을 명랑하게 하기위한」경품권판매가 실시되고 있다.
문화면에서의 변화는 비교적 덜 눈에 띄지만 한때 부르좌적이라고 비난당했던 서양고전음악이 연주되고있고 유행가도 생겨나고있다. 중공은 아직도 문학과 예술면에서는 서방의「부패」를 경계하고 작가와 예술가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중공은 서방기술을 따라가기 위해 78년이래 3만3천명이상의 학생들을 외국에 유학보냈는데 이 수는 공산당이 집권하기 시작한이래 27년동안 보낸 유학생수의 배가 넘는다.
외교면에서도 과거의 외국인 기피증을 탈피하고 있으며 「혁명수출」이란 옛구호대신에 개발도상국과의 일체감형성으로 정책방위를 옮겼다.
등소평은 최근 자신이 추진하고있는 개혁은 중공의 생산능력을 모시대의 평등주의로부터 해방시키기위한 것이기 때문에 문화혁명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등의 개혁에 대한 조직된 반대세력은 없고 단지 2천만 중공관료들의 보수성이 개혁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중공관리들은 말하고 있다.
새 관료층을 구축하기 위해 중공은 앞으로 4천만 공산당원을 재등록시킬 계획인데 그 과정에서 급진분자와 개혁반대세력을 몰아내려 하고있다.
중공은 완강했던 자력갱생정책을 포기하고 등의 문호개방정책아래 80억달러의 외국투자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84년 첫 9개월동안 대외교역망은 3백50억달러에 달하게됐다. 현재 중공이 갖고있는 외환보유고는 1백65억달러 정도인데 앞으로 수년동안 이중 1백40억달러를써서 외국기술을 도입할 계획인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등은 정부관료가 너무 구태의연해서 새 정책을 입안하는데 적합하지 않음을 인식한후 「사회과학원」으로 하여금 개혁의 내용을 입안하도록 하고있다.
지금까지 행정문제를 담당해오던 당서기국은 뒤로 밀려나고 있다. 서기국은 회의를 정기적으로 소집하지 않고있다.
중공은 국립상점에서 제대로 공급할수없는 상품과 서비스분야는 사기업을 허용하고있다. 현재 개인식당·수리점·사진관등 개인영업소 종업원수는 1천1백만명에 달하고 있는데 이 수는 78년의 80배나 되는것이다.
중공은 관료체제에 박력을 불어넣기 위해 나이든 요원들을 은퇴시켰는데 그들이 은퇴후에에도 봉급과 사택·자동차등을 계속 받도록하는 후한 대접을 계속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마찰없이 이 작업을 실시했다.
그결과 도시의 정부및 당관리층의 평균 나이는 7년, 공강경영층의 나이는 5년이나 젊어졌다.
현재 중공실용파들의 가장 어려운 투쟁은 문혁이래 생긴 「지식인」차별풍조를 없애는 일이다.
당서기장 호요방은 중공에서 교육부문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식과 교육을 경시하는 풍조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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