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삼성 이재용 부회장 사과 … 병원 혁신 계기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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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저희 삼성서울병원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어 “메르스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유족분들, 아직 치료 중이신 환자분들, 예기치 않은 격리조치로 불편을 겪으신 분들께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환자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다”고 약속하며 “저희는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했다. 제 자신, 참담한 심정이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거듭 머리를 숙였다. 메르스 2차 확산의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을 관장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부회장이 내놓은 재발방지책이 복잡한 응급실을 개선하고 부족한 음압병실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삼성 차원에서 병원 운영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을 추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감염질환 백신과 치료제 개발까지 다짐하면서 바이오 분야에서 공공적인 임무를 자임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메르스 직격탄을 맞은 삼성이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병원 안전과 감염병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의료 공공성을 적극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다른 병원들보다 응급실과 감염 차단에 훨씬 많은 투자를 해온 게 사실이다. 메르스 1번 환자를 발견하는 결정적인 역할도 해냈다. 14번 환자 역시 정부가 메르스 사태 초기에 발생 병원의 정보를 다른 의료기관과 공유하지 않아 삼성서울병원에서 ‘수퍼 전파자’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고 의료 수준을 자랑하던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에 뚫렸다는 사실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는 즉시 삼성서울병원이 대대적인 혁신에 착수해야 하는 이유다.

 삼성서울병원은 그동안 수익사업에 치중해 의료기관으로서의 공공성이 기대보다 부족했던 게 아닌지 되돌아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위기관리 시스템도 과감히 업그레이드해 국내 다른 병원들의 안전 시스템까지 한 차원 끌어올리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메르스 사태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일이고, 삼성서울병원이 한국 최고의 의료기관으로 거듭나는 길이라 믿는다.

 우리는 삼성 이 부회장의 사과를 지켜보면서 또 한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삼성서울병원보다 메르스 사태에 더 큰 책임이 있는 당국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8%가 메르스 확산에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고 했고, 전문가들은 50%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다. 메르스 사태가 잡히는 대로 청와대와 정부는 삼성을 뛰어넘는 진정성 있는 대국민 사과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당장은 메르스 바이러스 박멸이 중요하지만 길게 보면 메르스 사태의 뒷수습이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