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경숙 표절 사태 … 문학 출판계, 이대로는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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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경숙 소설가가 23일 마침내 입을 열고 표절을 간접 인정했다. 그러나 개운치 않은 대응으로 파장이 완전히 잦아들지는 미지수다. 신씨는 이날 한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라는 문제 제기가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조해본 순간 나도 그걸 믿을 수 없었다. 발등을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토를 달았다. 표절이 아니라 ‘표절이라는 문제 제기’가 맞고, 혹 표절이어도 의도적 표절은 아니라는 애매한 답이다. 대작가다운 보다 적극적이고 솔직한 대응이 아쉽게 느껴진다.

 이번 신씨 표절 사태는 단지 작가 개인의 윤리, 작가의식 차원을 넘어 한국 문학 출판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다. ‘전설’ 외에도 신씨가 연루된 표절 의혹 사례가 많았고 ‘전설’의 경우만 해도 이미 15년 전에 문제가 제기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의혹을 받고도 제대로 된 논쟁 한번 없이 국내 대표 작가로서 건재해왔다는 사실이 당혹감마저 안겼다.

 이날 한국작가회의 긴급토론회에 참가한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의식적이고 명백한 표절”이라는 평가와 함께 “2000년대 문학의 실패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패거리화와 권력화, 이에 따른 비평적 심의 기준의 붕괴와 독자 상실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 출판사와 돈벌이 되는 소수 작가 중심의 권력화, 그리고 출판자본에 예속된 비평가들의 ‘주례사 비평’. 이들이 건전한 자기 비판과 논쟁을 몰아내 ‘표절 사태’에 이르게 한 주범이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가뜩이나 위축된 한국 문학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외면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토론회에서 오창은 중앙대 교수는 “비평가들의 진지한 성찰과 함께, 이번 사건이 한국 문학의 존재조건을 바꿔놓은 문학사적 사건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학 출판계의 자성과 환골탈태만이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표절 사태를 슬기롭게 마무리하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