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동선에 김밥집 이름까지 공개 … “장사 말란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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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양대 간호학과 학생들이 17일 오후 교내에 모여 메르스에 감염된 선배 간호사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건양대병원의 한 수간호사는 입원 치료를 받던 메르스 환자의 심폐소생술을 하다 감염됐다. 뒤쪽 화면에 나이팅게일이 크림전쟁 당시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 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발열 이후 격리되지 않고 일상생활을 지속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환자가 서울에서 또 나왔다.

 서울 강남구 관계자는 17일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아내를 간병하던 중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된 152번 환자 A씨(66)가 지난 8일께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음에도 충남의 별장에 여러 번 왕래했다”고 말했다.

강남구에 따르면 격리 대상자에서 빠져 있던 A씨는 지난 15일 스스로 가톨릭대 성모병원을 방문해 검사를 받았다. 강남구 관계자는 “A씨가 별장을 가기 위해 거친 휴게소 등이 어디인지 파악 중”이라고 했다. A씨 사례는 발열 이후 9일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 137번 환자(삼성서울병원 응급이송 요원)와 거의 유사하다.

 137·152번 환자의 동선이 공공장소로 확대되면서 ‘메르스 정보의 즉각적 공개’라는 서울시의 원칙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35번 환자(삼성서울병원 의사)가 참석한 재건축 조합원 총회 장소뿐 아니라 환자의 동선에 포함된 쇼핑몰과 식당 이름까지 공개했다. 박 시장은 “정직만큼 중요한 정책은 없고 과잉 대응이 늑장 대응보다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공개 원칙은 해당 식당에 큰 타격을 줬다. 식당 이름이 공개되면서 업주는 일정 기간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서울시에서 ‘스스로 가게를 닫은 모범 사례’라고 소개했지만 지난 12일 박원순 시장이 쇼핑몰을 찾자 인근 상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에 서울시는 메르스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책까지 내놔야 했다.

 금천구는 지난 9일 중국동포인 93번 환자의 동선을 공개하며 특정 시장과 김밥집을 명시했다. 이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 식당 이름을 공개하는 건 더 이상 장사를 하지 말라는 의미”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식당 등 상점 이름을 공개하는 데 대한 분명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조성일(보건대학원) 교수는 “특정 시간대에 해당 장소를 다녀간 사람을 다 추적할 수만 있다면 굳이 상호 공개를 하지 않는 게 맞다”면서도 “하지만 추적이 불가능한 경우는 상호를 공개해서 접촉 가능성이 있는 시민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보 서울시 보건기획관도 “작은 식당까지 공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내부 의견이 많다”며 시청 내부의 고민을 전했다.

 서울시의 이 같은 고민은 137번 환자가 지하철 2·3호선을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 깊어졌다. 시는 지난 14일 대중교통 이용 사실을 인지했지만 동선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6일 본지에 관련 보도가 나오자 그제야 “시민의 알 권리를 우선한다”며 공개했다. 서울시는 이미 역학조사가 이뤄진 152번 환자의 동선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 보건기획관은 지난 16일엔 “접촉한 사람을 특정할 수 없는 마트나 미용실, 지하철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며 “재건축 총회는 참석자 명단이 있기 때문에 공개했을 경우 격리할 대상을 분명히 가릴 수 있지만 대중교통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기 때문에 장소를 알려도 예방적 효과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7일엔 “고민과 토론 끝에 대중교통까지는 공개하는 것으로 했다”고 했다. 건양대 홍지영(예방의학) 교수는 “공개의 범위와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정보는 잘못된 정보와 마찬가지로 혼란과 두려움을 확산시킨다”고 지적했다.

강인식·장혁진·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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