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일본 '자전거 택배'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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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도심에서 자전거로 서류 등을 배달하는 택배업이 신종 사업으로 성업 중이다. 김현기 특파원

14일 오후 따스한 햇살이 내리비치는 도쿄 도심 니혼바시(日本橋)의 고층 건물 숲. 가와고시 다케시(川腰武.28)는 경쾌한 발놀림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다. 어깨와 등에는 큼지막한 가방을 둘러멨다.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는 인도로, 파란 불일 때는 차도로 순간적으로 이동한다. 일본에선 인도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다. 곧 목적지인 도쿄증권거래소에 도착했다. 그는 가로수 옆에 자전거를 세우곤 쏜살같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의 직업은 '자전거 택배원'. '자전거 메신저'로도 불린다.

요즘 일본의 도쿄 등 대도시 도심에서 오토바이 택배 대신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히트 상품이다. 고객은 주로 도심의 기업체나 관공서다. 서류 등 부피가 나가지 않는 품목이 주요 배달 대상이다. 가격은 거리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자전거로 15분 거리면 900엔(약 9000원) 정도다. 자전거 택배업체들은 사무실이 운집해 있는 도심 4~5개 구에 설립돼 있다. 최근 도쿄 10곳을 비롯해 전국에 30곳이 새로 생겨났다. 시장규모는 약 20억엔. 오토바이 택배시장의 10분의 1까지 치고 올라왔다.

자전거 택배가 급성장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오토바이 택배에 비해 크게 느리지 않은 반면 가격은 20%가량 저렴하다. 특히 정체시간에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자전거는 도로와 인도를 맘대로 오갈 수 있어 일부 도심지역에선 오토바이보다 빠르다.

업체 입장에선 경비가 적게 든다. 일단 기름값이 들지 않는다. 보험금도 오토바이에 비해 훨씬 싸다. 자전거도 대부분 택배원들의 개인 물건이다. 자전거 택배사업은 별도의 운송사업자 허가를 받지 않아도 돼 시장 진입이 용이하다. 매연이 전혀 배출되지 않아 도심 환경에도 큰 공헌을 한다. 도쿄 도심에서 10대의 택배 자전거로 하루 평균 200건의 주문을 소화하고 있는 업체 '노사카 세븐'의 노사카 겐이치(野坂憲一) 사장은 "종업원 대부분은 돈벌이보다는 자전거의 매력에 빠진 애호가들"이라고 말했다. 하루에 자전거로 달리는 거리가 평균 100km가 되다 보니 다이어트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자전거 메신저'들에게도 애로사항이 있다. 가와고시는 "초보 메신저들은 언덕길에선 쉬었다 갔다를 반복하다가 경륜이 붙을수록 익숙해지고, 급경사에선 우회로를 활용하는 노하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섭씨 40도 가까이 올라가는 더운 여름날과 추운 겨울날도 고역이다. 또 "자전거 메신저들이 인도를 쌩쌩 달려 충돌사고가 날까 겁난다"고 불평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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