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드워Z 브래드 피트 같은 베테랑 역학조사관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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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희

한국엔 진정한 의미의 역학전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대희(54) 서울대 의과대학장은 12일 인터뷰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같은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선 영화 ‘월드워Z’의 유엔 조사관 브래드 피트(제리 역) 같은 역학전문요원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잘라 말했다. “영화 주인공이 유엔의 권한을 갖고 한국(평택 미군기지)·이스라엘 등을 돌며 바이러스의 근원을 추적한 것처럼 우리도 행정권을 부여받은 방역전문가가 현장부터 챙겼다면 이렇게까지 당하진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강 학장은 1994년부터 2년간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역학전문요원(EIS·Epidemic Intelligence Service) 과정을 이수했다.

 -왜 EIS에 지원했나.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존스홉킨스 의대의 6대 기관장 중 5명이 EIS 출신이었다. 연간 70~80명을 선발하는데 경쟁률이 10대 1이 넘었다. EIS는 51년 한국전쟁 당시 생화학 공격에 대한 우려로 출범했다. 이후 각종 감염병에 대응해왔다. 94년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나도 기회를 잡았다.”

브래드 피트가 역학조사관 역할을 맡은 영화 ‘월드워Z’.

 -EIS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언제나 현장에 나갈 준비가 돼 있는 질병 수사관’이다. CNN도 훈련 장소였다. 주민 설득과 공포 통제를 위한 미디어 대응능력이 필수였다. 카운티 폐쇄와 이동권 제한에 필요한 행정 능력, 정책 입안 능력,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지휘하는 프로듀서로서의 능력 등 총체적 자질이 요구됐다.”

 -우리 현실과는 차이가 크다.

 “한국 의사의 90% 이상은 치료·임상 전문가다. 그래서 감염내과 의사가 최전선에 배치된다. 하지만 전선엔 ‘질병의 원인과 본질을 추적하는 수사관’이 있어야 한다. EIS 1년 예산이 11조원이다. 우리는 한 푼도 없다. 실마리를 찾는 필드의 베테랑이 없다. 이번에도 그랬다. 현장을 파악하기보다 바이러스의 학문적 논의가 주를 이뤘다. 초기에 기민한 대응을 못했다.”

 -선진 시스템 마련이 시급해 보이는데.

 “감염병 유행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메르스가 가면 다른 놈이 온다. 12일 기획재정부에 한국의 EIS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매년 10명씩의 방역전문요원만 잘 육성해도 10년이면 100명을 확보할 수 있다.”

 -전문가가 국내에 없는데 누가 훈련시키나.

 "부끄럽지만 초기 멤버들은 미국 EIS에서 훈련받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서 요청했으면 좋겠다. EIS는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정보도 얻어내야 한다. 9·11 테러 때 EIS가 활약한 건 유명한 얘기다. 사회적 트라우마도 감염병처럼 대응해야 한다. 세월호도, 메르스도 어떤 의미에선 비슷한 재난이다.”

강인식 기자 kang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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