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현장사설

사투 중인 메르스 전사들을 힘차게 응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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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6월 11일부터 메르스 중앙거점의료기관으로 지정돼 입원·외래진료·응급진료 가 중단됐음을 알려 드립니다.”

 12일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입구에 나붙은 현수막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 9명을 집중 치료하는 이 병원은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최전선에 서 있다.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직원 3명이 병원 입구부터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평소 차들로 빼곡했던 주차장에는 음압격리텐트 4동이 들어섰다. 마치 야전병원의 막사나 다름없다. 이미 8층에 17개 음압병상을 갖춘 중앙의료원이 이날 6·7층에 40병상을 추가한 데 이어 외부 주차장에 음압 텐트까지 세운 것은 메르스 환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위기상황에 대비한 비상조치다.

 권용진 상황실장은 “메르스 사태가 빨리 진정돼 야외 음압텐트까지 환자가 들어차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중앙의료원은 5월 20일 확진 판정을 받은 첫 환자가 입원해 있다. 총 12명의 환자가 들어왔는데 2명은 숨졌고 1명은 완치돼 퇴원했다. 퇴원한 환자는 첫 환자의 부인이다. 현재 입원환자 중 4명은 기도삽관(호흡보조장치)을 하고 있는 위중한 상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중앙거점병원으로 지정된 후 기존에 입원해 있던 환자 200여 명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갔다. 외래환자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날 병원 1층 로비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평소엔 외래환자와 가족들로 북적였던 곳이다.

 메르스 환자 치료엔 의사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모두 5개 조가 교대로 돌아간다. 감염내과·호흡기내과·이비인후과 등 메르스 관련 전공 의사들이 총동원됐다. 이들은 입고 벗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는 보호복을 입고 음압병실에 들어간다. 아무리 소명의식이 남다른 의사라고 해도 보호복을 입고 근무하는 것 자체가 힘든 노동이다. 에볼라바이러스 진료 자원봉사에 투입됐던 한 의사는 보호복을 입고 치료하는 동안 몸무게가 5㎏ 넘게 빠졌다고 한다.

 메르스 의료진은 오직 사명감 하나로 최전선에서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가 장기전으로 치달으면서 담당 의료진의 피로도 쌓여가고 있다. 만약 환자가 지금보다 급속히 늘어나면 더 이상 버텨내기 어려운 한계점에 이를지도 모를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 다른 병원의 전문인력들까지 메르스 진료병원에 지원 파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는 메르스 증상을 나타내는 의심환자를 병원 밖의 별도 공간에서 진료하는 안심병원 87곳을 발표했다. 이곳에서 중증 의심환자로 분류되면 32곳의 메르스 노출자 진료병원으로 이송된다. 여기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 16곳의 치료병원으로 옮겨 격리치료를 한다. 그러나 일부 메르스 선별진료 병원은 감염내과 전문의가 없어 일반내과 전문의가 의심환자를 걸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치료병원의 상황도 열악하다. 감염내과 전문의가 부족해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다 보니 피로가 극에 달하고 있다. 치료병원으로 지정된 국립 부산대·강원대병원은 메르스 환자를 격리치료할 음압병상조차 없다. 부산시의 경우 부산대병원을 음압병상이 있는 동아대병원으로 대체했지만 강원대병원은 부랴부랴 이동 음압기를 주문할 정도다. 사태 초기 메르스 청정지역이라며 환자를 받지 않겠다던 강원도는 자기 지역 병원의 인프라가 이 정도인지 알고나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다 울산시 유일의 메르스 치료병원인 울산대병원 노조는 임단협 문제로 파업 수순을 밟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메르스에 호되게 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업보일지 모른다. 그동안 예방의학·감염의학 등 방역 전문인력을 길러내는 데 너무 소홀했다. 전염병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이를 민간 병원에 미루는 것은 관군이 없으니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켜 알아서 적군을 막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역학조사관은 34명에 불과하고 이 중 32명은 공중보건의다. 치대생·한의대생도 포함된 의대생 출신들이 단기간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된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은 “우리나라에 전염병의 원인을 파헤치는 역학전문인력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봐야 한다”며 혀를 찼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를 성공적인 방역사례로 들지만 냉정하게 뜯어보면 방역 실력보다는 운이 좋았다고 봐야 한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는 우리의 방역체계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도 안 하고 있다. 사태가 터지면 한창 현장에서 수습해야 할 실무자들을 국회까지 불러내 윽박지르기나 하지 질병관리예산은 오히려 깎고 있다. 전염병은 한번 창궐하면 이에 대비하는 비용보다 훨씬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소를 잃은 뒤에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역학조사·방역·병원감염·치료 등 모든 과정을 복기해 어떻게 구멍이 뚫렸는지를 파악하고, 과감하게 예산을 투입해 전염병에 대비한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시작된 2차 유행은 사그라드는 추세지만 3차 유행의 위험은 아직 남아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믿는 최후의 보루는 일선 병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메르스 전사들밖에 없다. 부디 메르스를 박멸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보호복을 입은 귀에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 힘차게 메르스 전사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