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끝낸 엘리엇, 물산 지분 더 살 지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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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겉으로는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라지만, 삼성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려는 속내는 삼성전자 지분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약 8조원)를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을 뺀 삼성 사주 일가와 삼성 계열사의 삼성전자 지분은 13.2%에 불과하다. 이들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13.8%, 약 1조400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정도 지분으로는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불안하다. 삼성으로선 어떻게 해서든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만약 삼성이 이 지분을 주식 시장에서 사들이려면 8조원이 필요하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 틈을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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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엇은 철저히 준비된 계획에 따라 숨가쁘게 움직였다. 2~3월 공시할 필요가 없는 삼성물산 지분(4.95%)만 사들인 뒤 합병 발표를 기다렸다. 삼성이 합병을 발표하자 이달 3일에만 2.17%를 더 사들였다. 다음날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다고 공시한 뒤 바로 “합병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과소평가 했고 합병조건도 공정하지 않다”며 반대했다. 또 이날 삼성물산에는 현물배당이 가능하도록 정관 변경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했다. 5일에는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 등에 이번 합병을 반대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9일엔 엘리엇의 장기인 ‘소송 카드’를 꺼내들었다. 서울중앙지법에 삼성물산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식에 10일 삼성물산 주가는 전날보다 10.29%나 급등했다.

 삼성도 대응에 나섰다. KCC를 백기사로 끌어들였다. 삼성물산은 10일 자사주 899만557주(5.76%) 전량을 KCC에 매각키로 했다고 밝혔다. 자사주는 상법상 의결권이 없지만 우호적인 제3자에게 매각하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강현철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저평가돼 있으니 주총 전에 중간배당을 하거나 아니면 합병 비율(1:0.35)을 재조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만약 이를 삼성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총에서 치열한 표 대결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엘리엇이 소송을 냈지만 이번 합병은 상법 테두리 안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승소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엘리엇이 기관투자가에 서한을 보내 세 규합에 나서고 여론몰이를 통해 소액주주를 자극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주총에서 합병이 성사돼도 삼성 입장에선 그 후가 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냉각기간(지분 매입 공시 이후 5일간 추가 매입 금지, 6월11일까지)이 지난 다음 추가로 지분을 사들이거나 우호세력의 지분 매입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때 매입한 주식은 7월17일 열리는 합병 결의 주총에서는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엘리엇이 추가로 임시주총을 소집하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윤 연구원은 “만약 엘리엇이 삼성과 버금가는 지분을 취득한 후 주총에서 ▶이사 해임안 ▶중간 배당 ▶자산 양수도(삼성전자, 삼성SDS 지분 매각) 등을 제시하고 합병 주총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다면 주총 결과와 상관없이 삼성에는 큰 시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투자자 등 소액주주의 움직임도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합병안에 반대하는 일부 소액 주주는 5일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를 인터넷에 개설하고 주식 권리 위임에 들어갔다. 9일까지 이 카페에 위임 의사를 밝힌 삼성물산 주식은 25만7573주(삼성물산 발행주식의 0.16%)에 달한다. 카페 운영자 ‘독타맨’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적절치 못한 합병비율이 카페를 개설한 이유”라고 밝혔다. 삼성물산의 투자자별 지분율은 외국인 33.7%, 기관투자가 20.7%(국민연금 9.98%), 개인·기타법인 25.9%다.

김창규·김영민 기자 teent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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