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 되살린 정지선의 역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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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사업도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업의 본질’에 충실하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정지선(43·사진)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012년 전격 인수한 국내 패션기업 한섬이 3년 만에 완연한 성장궤도에 올랐다.

 10일 패션·유통업계에 따르면 한섬은 6개월 연속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수 침체와 유니클로·자라 등 해외 SPA(제조·유통 일괄형)브랜드 강세로 고사 직전인 국내 패션업계에선 이례적인 호실적이다. 한섬은 앞서 1분기에 매출 1516억원과 영업이익 177억원을 기록해 전년동기대비 각각 17.8%와 19.1% 증가했다. 신한금융투자는 “2분기 매출 성장률은 1분기 보다 높은 19.6%으로 추산되며 제품 브랜드 성장률이 반등하면서 수익성이 계속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황속 성장’은 정 회장이 밀어붙인 ‘역발상 경영’이 자양분이 됐다. 정 회장은 패션업의 본질을 뛰어난 디자이너로 보고 불황 속에서도 철저히 사람에 투자했다. 최근 3년 ‘패션 암흑기’에 디자이너 100여명을 충원해 업계 최대인 260여명으로 확대한 게 대표적이다. ‘디자이너는 옷만 만든다’는 인식을 뒤집고 ‘학점이수제’를 통해 인문학·역사·심리학·리더십 등 다양한 과목을 이수하고 타부서 직원들끼리 노하우를 전수토록 했다. ‘여성이 잘 쉬어야 일이 계속 잘 된다’는 발상도 참신하다. 한섬은 직원의 75%가 여성이다. 이에 따라 임산부 전용 휴게실과 근로시간 단축, 출근시간 지연제도를 도입하고 내년엔 업계 최고 수준의 어린이집도 신설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국내 패션 역량이 해외 못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행보다는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콘셉트’를 중시하고 돈과 시간이 들더라도 자체 브랜드를 육성해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는 걸 사업의 본질로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핸드백 등 잡화 브랜드인 ‘덱케’와 니트전문 브랜드인 ‘더 캐시미어’ 등 자체 국산 브랜드를 선보였다. 한섬의 매출 구조는 70%가 자체 브랜드(타임·타임옴므·마인·시스템·시스템옴므·SJSJ 등)고 30%가 해외브랜드(랑방·끌로에·지미추·발리·벨스타프·이로 등)다.

 자체 역량에 집중한 결과 글로벌 브랜드 파워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한섬은 10일 프랑스의 고급 여성복 브랜드인 ‘이치아더(Each X Other)’의 국내 독점 유통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프랑스를 제외한 곳에 단독매장을 여는 건 처음이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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