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방위상 “남중국해에서 집단자위권 행사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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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인공섬.

남중국해에 갈등의 파도가 높아지고 있다. 남중국해는 중국과 대만·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6개국이 영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원유과 천연가스가 풍부하게 매장된 해역이자 동북아로 연결되는 주요 물류 수송로다. 최근에는 중국이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에 대한 영유권 강화를 위해 인공섬을 건설하면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중국과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마찰을 빚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가세로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이 같은 남중국해 갈등의 불똥이 우리나라까지 튀기도 했다. 지난 3일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러셀 차관보가) 일반론 차원의 견해를 표명한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지만,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달 중순 미국을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문제가 정식 의제로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6일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전날 중의원 평화안전법제특별위에서 “남중국해 분쟁에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무력행사를 위한 신(新) 3요건에 적합할 경우 법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답했다. 신3요건은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생명·자유·행복 추구 권리에 명백한 위험이 있을 때▶이를 제재한 수단이 없을 때▶최소한의 실력행사가 필요할 때다. 이 경우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이 남중국해 문제에 적극 개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근거다.

일본·필리핀, 中 견제 위해 군사협력 강화

일본은 특히 주변국들과의 협력 강화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분쟁 당사국인 필리핀과 ‘방문부대지위협정(VFA)’을 추진하고 있다. 이 협정은 일본 자위대 소속 항공기와 함정들이 급유와 물자 조달을 위해 필리핀 기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양국의 합동 군사훈련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체결될 경우 자위대는 남중국해에서 정찰활동 등을 할 수 있게 되는 등 군사작전 범위를 크게 확장하게 된다. 외신들은 “필리핀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으로부터 군비 지원을 받고 일본은 필리핀을 근거지로 남중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필리핀에 조만간 순시함 10척을 제공할 계획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필리핀 외에도 호주와 관계를 강화하면서 해양강국으로서의 입지 강화에 나섰다. 그는 최근 케빈 앤드루스 호주 국장장관과 만나 방위 분야 공조강화에 합의했다. 일본이 최근 호주와 준동맹국으로 관계를 격상한 것도 중국 견제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7일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중국의 남중국해 암초 매립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베트남 분쟁해역 관광코스 개발 검토

동남아 국가들도 중국 영유권 강화에 구체적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5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베트남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군도의 일부 섬들을 관광코스로 개발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실효 지배를 하고 있는 섬의 등대와 주변 해역을 유람선으로 관광하는 프로그램이다. 베트남 정부는 이를 통해 영유권을 확실히 하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해 중국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난사군도와 주변 섬들에 대해 분명한 주권을 갖고 있으며 베트남의 이런 행동은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을 방문한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중국을 나치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2차 대전 직전 나치의 체코슬로바키아 주데텐란드 지역 편입 등 영토 확장에 대한 유럽의 초기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의 움직임에 강공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남중국해 다툼에 가세하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남중국해에 건설하고 있는 인공섬에 무기를 배치하자 미국은 인근 해역에 군함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미·중 간 무력충돌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중국이 인공섬에 무기를 배치한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역내 긴장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인공섬 조성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러셀 차관보는 “중국의 인공섬 건설 등은 주변국들에게 중국이 패권국을 꿈꾸고 있다는 의심을 품게한다”고 비판했다.

중국 “미국 개입이 남중국해 안정 위협”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오래전부터 남중국해 주권을 갖고 있다. 인공섬 건설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행위로 주변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이 문제에 개입하는 미국이 역내 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중국이 2013년 동중국해에서 선포했던 방공식별구역(ADIZ)을 남중국해로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의 항공기와 선박은 남중국해 진입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

남중국해 분쟁으로 미국과 중국의 무력충돌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는 이와 관련한 3가지 시나리오를 내놨다. 우발적인 사고에 의한 무력충돌, 중국의 의도적인 위협에 따른 충돌, 간접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중국이 영해라고 주장하는 해역에 미 해군 함정이 들어갈 경우 우발적으로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중국은 현재 스프래틀리군도에 활주로를 건설하는 등 군사기지화를 추진하면서 미국과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미 선박이나 항공기의 스프래틀리군도 인근 진입을 의도적으로 막으면서 위협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간접충돌은 중국이 필리핀 선박 등을 나포해 미국을 자극한다는 시나리오다. 이럴 경우 미국은 필리핀과의 동맹에 따라 분쟁에 개입하게 된다. 미 중앙정보국(CIA) 마이클 모렐 전 부국장은 “중국은 떠오르는 강국이고 미국은 현재의 강국”이라며 “이런 상황은 향후 양측에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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