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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with] 윤수연양의 소믈리에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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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선생님은 "철없는 생각"이라고 웃으셨다. 어머니는 "여자애가 웬 술타령이냐"며 화를 내셨다. 하지만 '와인 열병'에 걸린 윤수연(19)양은 요지부동이었다. 누가 뭐래도 꼭 소믈리에(와인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주경야독을 시작했다. 낮엔 아르바이트, 밤엔 와인 스쿨. 그렇게 3개월. 운 좋게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할 기회를 잡았다. 다음주부터 출근. 행운은 계속 이어졌다. '실전 테스트'를 해 보고 싶던 차에 week&에서 기회를 준다나. 더구나 '일일 사부'가 우수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롯데호텔 '바인' 공승식(43) 지배인이라니….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정리=김한별 기자<idstar@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와인만 알아선 소용없다

롯데호텔에 도착한 건 오후 2시40분. 약속보다 10분 늦었다. 일찍 출발했는데 이상하게 길이 막혔다. 하지만 공승식 지배인은 냉정했다. "소믈리에는 상대에게 신뢰감을 줘야 합니다. 첫 대면부터 지각을 해서야…" 그래서일까. 실습은 제쳐 두고 '완전 기초'부터 시작이다.

와인은 예민하고 까다로운 술이다. 포도 품종과 원산지, 숙성 연도와 방법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다. 거기에다 라벨도 프랑스어 아니면 영어 일색.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뭘 골라 어떻게 먹을지 헷갈리게 마련이다. 소믈리에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와인을 추천해 주는 사람이다. 손님의 입맛과 주문한 음식 등을 고려해 가장 어울리는 짝을 찾아 주는 것이다. 와인에 대해 해박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까다로운 몸'을 모시는 만큼 자기관리 노력도 눈물겹다. 섬세한 미각.후각을 유지하기 위해 독한 술이나 담배는 절대 금기. 맵고 짠 음식, 향이 진한 화장품도 멀리한다.

하지만 공 지배인은 좋은 소믈리에의 조건을 하나 더 꼽았다. "무엇보다 손님을 대하는 바른 몸가짐과 서비스 정신이 중요합니다. 와인 좀 안다고 손님을 가르치려 들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손님들과 막힘 없이 대화를 나누자면 화술도 있어야 하고 교양.상식도 쌓아야 한단다. "와인을 파는 건 술을 파는 게 아닙니다. 문화를 파는 겁니다."

*** 왜 이렇게 떨리지

드디어 본격적인 실습. 일단 와인 잔 알아맞히기부터 시작했다. 보르도.부르고뉴.샤르도네.소비뇽 블랑.샴페인. 길고 짧고 넓적하고 홀쭉하고. 헷갈린다. 사진으로 '이론 공부'는 많이 했지만 실제 종류별로 다 보기는 처음이다. 5개 중 겨우 3개밖에 못 맞혔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음은 블라인드 테스트다. 맛과 향만으로 어떤 와인인지 맞혀야 한다. 가장 난코스다. 알려진 와인 향만 45~50가지. 유통되는 아이템 수만 약 4000종이다.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이라면 모를까, 이제 막 와인의 세계에 입문한 '왕초보'가 그걸 구별해 내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공 지배인도 큰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다. 무슨 향, 무슨 맛인지 묘사나 한번 해 보란다. 화이트 와인을 한 잔 집어 들었다. 코와 혀에 감기는 새콤달콤한 맛과 향. 뭘까?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공 지배인은 '덜 익은 자두 향'이란다. 아직 숙성이 덜 돼 1년 후쯤에나 마시는 게 좋겠다나.

이번엔 서빙 연습. 공 지배인이 시범을 보여준 뒤 따라해 보란다. 이것도 처음이다. 와인스쿨 수강생들끼리 연습을 해 보긴 했지만 격식을 갖춘 실습은 아니었다. 거기에다 공 지배인이 직접 손님 역할을 맡았다. 이건 코앞에 감독관을 앉혀놓고 시험보는 격이다. 떨린다.

"메뉴는 항상 손님의 오른쪽에서 건네세요. 메뉴를 보는 동안엔 5m쯤 떨어져 기다리고요. 바로 옆에 지켜 서 있으면 손님이 불편해 해요."

"병을 잡을 때 아기를 안 듯 감싸 안으세요. 그래야 흔들리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지적에 당황했던 걸까. 점점 더 실수 연발이다. 와인을 잔에 따를 땐 테이블에 흘리기까지 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와인을 따른 뒤에 바로 병을 떼어서 그래요. 잠깐 멈췄다가 들어올리세요. 병목을 타고 흐를 수도 있으니 꼭 핸드 타월로 밑을 받쳐주고요." 새하얀 테이블 보를 물들인 레드 와인처럼 내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다.

체험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어떻게 3시간이 흘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꼭 본고사를 앞두고 아주 어려운 모의고사를 치른 느낌이랄까. 그래도 덕분에 내 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아 마음만은 뿌듯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꿔온 내 꿈, 누구나 맘 편히 찾아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푸근하고 따뜻한 레스토랑 소믈리에가 되는 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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