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땅 게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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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용인(龍仁)의 산하는 빛을 머금어 아늑하다. 6월의 용인은 푸른 것은 더 푸르고 붉은 것은 더 붉다. 산과 구릉은 첩첩이 이어지고, 골은 깊고 서늘하다.

그렇다고 사람을 위압하는 악산(岳山)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에버랜드 근처의 호암미술관에 서서 저 앞의 반짝이는 호수와 눈부신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천국 아닌가. 여기서 인생을 멈추고 싶다'는 내면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용인은 망자(亡者)의 안식처라는 이미지가 있었다.'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옛말의 유래 중 하나는 이렇다.

용인에 살던 여인이 남편이 죽자 진천으로 개가했다. 용인의 아들이 장성해 진천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를 용인으로 모시기 위해서다. 그러나 진천 아들의 반대도 완강했다. 원님이 내린 판결은 다음과 같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땐 진천의 아들이 모시고, 돌아가신 뒤엔 용인의 아들이 모셔라."

풍수이론이 묘터의 최고로 용인을 치는 것은 그곳의 바람이 거칠지 않고 물이 사방으로 빠져나가는 지세여서다. 유골에 모여 있는 생기가 바람에 흩어지지 않고, 물의 기운에 쇠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네번째 대선에 도전하기 2년 전쯤 양친과 여동생, 사별한 전처의 묘를 은밀하고 전격적으로 용인에 이장했다. 육관도사로 불리는 지관 손석우씨가 묏자리를 잡아줬다.

자기돈을 들여 이장작업을 실무지휘한 DJ의 측근은 그에 따른 보상이었는지 집권 뒤에 괜찮은 관직에 올랐다. 용인 땅엔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 조선의 강직한 도학 정치가 조광조, 실학의 태두인 유형원 등이 묻혀 있다.

이들의 인생은 비극적이었으나 의리와 애민의 정신은 살아 있다. 유형원 선생은 "땅은 천하의 근본이다. 근본이 문란해지면 법도가 무너진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 소유하고 있는 용인 땅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땅 게이트'는 당사자뿐 아니라 盧대통령의 도덕성까지 훼손할 기세다.

용인의 소용돌이는 산업.교통.물류의 발달로 땅의 경제적 가치가 크게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권력은 두려워해야 한다. 농경민족 유전자인 대한민국 땅에서 땅을 갖고 장난치면 땅이 무너져 내려앉는 토붕(土崩)의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