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폭 좁고 비 오면 유실 … 대전 황톳길 예산낭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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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대전시 서구 월평동 무지개아파트에 조성된 황톳길.

대전시 서구의 황톳길이 예산 낭비 논란에 휩싸였다. 주민 휴식공간 제공 차원에서 만들고 있는데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논란은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이 확보한 국비 3억원을 놓고 불거졌다. 서구청은 이 예산으로 둔산동 수정·샘머리아파트 주변 1.7㎞ 구간에 올 11월까지 황톳길을 놓을 계획이다.

 이에 서구의회가 예산 집행에 이의를 제기했다. 구 의회 도시건설위원회에서 최근 열린 제1회 추경예산 심의에서 일부 의원들은 “수정·샘머리 아파트 주변에는 공원과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황톳길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한영(새누리당) 의원은 “예산이 있다는 이유로 연말에 멀쩡한 보도블럭을 교체하는 것과 유사한 성격의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도시건설위원회는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하지만 며칠 뒤 열린 예결위에서 삭감된 예산이 부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구의원들이 “지역 국회의원이 확보한 예산을 못 쓰게 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다.

 서구청은 2009년 가기산 청장 때 황톳길 조성을 시작했다. 2006년 대전 계족산에 만든 황톳길(14.5㎞)이 ‘맨발 걷기’로 인기를 끌자 도입했다. 서구는 둔산동 가람·보라아파트, 관저동 원앙아파트, 월평동 무지개아파트 등 4곳에 황톳길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시 예산 3억89000만원이 쓰였다.

 서구청은 또 만년동 강변·월평동 무궁화아파트 등 총 2.9㎞ 구간에 오는 7월까지 황톳길을 조성한다. 이 사업비 5억원도 박 의원이 확보한 국비다. 박 의원은 “황톳길이 도심을 녹지공간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며 “설치를 요구하는 주민들이 많아 예산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톳길은 관리에 문제가 있다. 비가 내리면 모두 휩쓸려 다시 깔아야 한다. 서구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토와 생석회를 혼합해 깔았다. 혼합한 황토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유실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보송보송한 황톳길을 맨발로 걷게 한다’는 황톳길 조성의 본래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무지개아파트 황톳길에는 황토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시멘트 길과 비슷하다.

 사생활 침해 논란도 있다. 황톳길은 아파트 단지 인도와 아파트 사이의 나무를 심은 공간에 만들고 있다. 현재 만년동 상록수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황톳길이 조성되면 저층 공간 주민들의 사생활이 노출되니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길이 폭 1.2m로 좁아 교차통행이 안돼 이용자들이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일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황톳길 조성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민숙(46·월평동)씨는 “많은 예산을 들여 길 옆에 왜 또 다른 길을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구의회 윤황식 의원은 “황톳길은 계족산 한 곳 정도 있어야 대전의 대표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며 “이제라도 예산 집행에 앞서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했다.

김방현 기자 kbh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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