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외엔 쓸 수 없는 ‘한국판 닉 부이치치’ … 신병들에게 희망 전하는 육군 홍보대사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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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형민씨가 발로 그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캐리커처. [사진 대구 성보학교]

엄마 아빠는 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다. 팔과 손은 전혀 쓰지 못한다. 휠체어 없이는 다닐 수 없다. 신체 중 자유롭게 움직이고 쓸 수 있는 것은 입과 발가락뿐. 하지만 늘 미소를 머금고 입으론 하모니카를 불고 발가락으론 그림을 그리며 희망을 세상에 전한다.

 한국의 닉 부이치치(팔과 다리 없이 세계를 누비는 희망전도사)로 불리는 1급 지체장애인 표형민(27)씨. 그가 육군 홍보대사가 된다. 걸스데이 등 주로 아이돌 그룹이 홍보대사를 맡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육군 제50보병사단은 2일 표씨를 사단 홍보대사로 공식 위촉한다.

 그는 이름과 얼굴만 있는 홍보대사가 아니다. 연 8000여 명이 입영하는 신병교육대대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인생담을 풀어놓는다. 관심사병을 만나 상담도 한다. 표씨는 “화장실 용변을 볼 때도 도움을 받아야 하고 식사도 혼자는 힘들지만 행복한 나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희망을 주기 위해 홍보대사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선천적 장애인인 표씨는 생후 1주일 만에 대구의 한 수녀원에 버려졌다. 2살 때 수녀원에서 다시 고아원인 애망원으로, 9살 때 성보재활원으로 또 옮겨졌다.

 좌절에 빠져 있던 그에게 희망은 8살 때 우연히 찾아왔다고 한다. 발가락으로 만화를 그리면서다. 오른발 엄지와 검지 사이에 연필을, 왼발에 지우개를 끼웠다. 그는 “매일 5시간씩 반복해서 그렸는데 사람들이 보고 좋아했다”며 “그러면서 발가락이라도 쓸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 그는 구족화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사람 얼굴이나 건축물까지 발가락만으로 그려낸다. 오는 12월엔 대구에서 개인전도 연다. 장애인 하모니카 봉사자로도 유명하다. 재활원 동료 장애인 9명과 ‘맑은소리 하모니카단’을 꾸리고 지난해 1월과 올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휴스턴에서 초청 공연까지 했다. 노봉남(57) 성보학교 교사는 “연주가 시작되면 공연장은 감동으로 금세 눈물바다가 된다”며 “쓸 수 있는 모든 신체로 우리 사회에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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