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불만 많은 보험사 그물망 감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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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직장인 박진우(50)씨는 10년 전 종신보험에 가입하면서 월 20만원인 보험료 20년치를 한꺼번에 납부했다. “일시납으로 하면 총액의 10%가 할인돼 4800만원이 아니라 4320만원만 내면 된다”는 보험설계사의 설명이 그럴 듯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암 판정을 받게 되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박씨가 가입한 종신보험은 암 등 치명적 질병에 걸릴 경우 그 즉시 보험료 추가 납부가 중단되는 상품이었다. 월납으로 했다면 나머지 10년치를 내지 않아도 됐다. 박씨는 보험사에 보험료 환급 여부를 문의했지만 “일시납으로 낸 돈은 돌려받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박씨는 “보험에 가입할 때는 이런 얘기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사기 아니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보험사들의 불완전·부실판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금융당국이 대책마련에 나섰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보험사들에 대한 상시감시지표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상시감시지표는 불완전판매비율, 보험계약 조기해지율, 보험금 부(不)지급률 등 보험사 평가와 감시의 근거가 되는 지표들이다.

 금감원은 현재의 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10여개의 지표들을 새로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박씨처럼 보험료 일시납의 단점을 몰랐던 고객을 위해 ‘일시납보험료 증감률’, 보험 판매만 하고 이직해버리는 ‘철새 설계사’ 비율을 가려내기 위해 ‘조기이직 설계사 모집계약 13회차 유지율’ 등을 추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실적쌓기용 보험 갈아타기인 ‘승환계약’ 의심 비율, 초회 보험료에서 사업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신계약 사업비율’, 매달 마지막 5일간의 계약 비율을 나타내는 ‘월말계약 집중률’ 등의 추가 여부도 논의 중이다.

보험사들이 보험계약 건수를 올리기 위해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상품을 팔았을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한 지표들이다.

 이와 함께 ‘대당 평균 보험료 할인율’, ‘장기 미결건수 보유율’ 등 자동차 보험 전용 감시지표를 새로 만드는 방안도 논의된다. 금감원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자동차보험사들에 적용할 지표들을 세분해 확정한 뒤 이르면 하반기 중 시행에 착수할 계획이다.

 보험가입자의 가장 큰 불만사항인 ‘보험금 지급 지연’ 관행에도 메스가 가해진다. 금감원은 보험금을 늦게 지급하는 행태가 보험산업에 대한 신뢰저하를 초래한다고 보고 보험사들의 보험금 지급실태를 대대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조만간 보험금 지급 관련 종합대책도 발표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금 지급 관련 민원은 1만9275건으로 전체 보험민원의 43.7%였다. 원칙적 보험금 지급 시한인 ‘신청 후 열흘’을 넘겨 지급된 보험금도 지난해에만 2900억원, 최근 5년 동안 1조5000억원에 달했다.

 강화된 상시감시지표와 보험금 지급 대책이 시행될 경우 보험사들은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강화되는 지표를 충족시키려면 보험사들이 판매방식을 개선하고 고객서비스 수준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보험가입자들이 그 만큼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보험업계의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데 당국은 부담만 지우려고 하는 것 같다”며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면 고객 서비스는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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