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달<본사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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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21일은 경찰이 창설 된지 39주년이 되는 날이였다. 해방 후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나 영욕이 점철된 역사 속에서 숱한 시련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치안의 대들보로 이바지한 노고에 먼저 치하와 격려를 보낸다.
경찰은 이날을 맞아 많은 공로 경찰관들을 1계급 특진시키고 칵테일파티를 열어 자축도 하고 「경찰의 발자취」라는 홍보 책자도 발간했다.
이 홍보 책자에서는 경찰이 그 동안 밤낮으로 애써 온 업무 추진 통계가 선보였지만 이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강력범 검거율이였다.
83년9월부터 84년8월까지의 살인 사건은 5백40건 발생에 5백5명을 잡아 93 5%의 검거율을 보이는 등 이기간에 발생한 7천9백92건의 강력 사건 가운데 검거율은 무려 97 1%에 검거 인원만도 1만5백40명에 이르고 있다.
고도의 과학 수사를 자랑하는 영국 경찰의 검거율이 30%, 미국의 23%,일본의 78·4%에 비하면 놀랄 만한 검거율이다.
부족한 장비와 인원, 쥐꼬리만한 수사비를 갖고도 금메달 감인 우리 경찰의 우수한 수사 능력과 신통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이 검거율은 실제로 발생한 강력 사건의 검거 실적이 아니고 경찰에 신고한 강력 사건의 검거율이다.
경찰 조사로는 발생되는 강력 사건 가운데 제대로 신고 되는 것은 5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49%가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기간의 강력 사건이 모두 신고되었다면 7천9백건의 2배 가까운 1만5천8백 여건이 되는 셈이며 검거율은 50%미만에 불과한 것이다. 피해를 당한 시민들이 몽땅 신고했더라면 더 많은 범인을 잡았을 것이고 검거율도 97·1%까지는 못되더라도 상당 수준에 이를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신고를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강력범이 재미를 붙여 활개를 치고 재범의 악순환을 빚고 있는 것이다. 강력범들의 재범의 악순환 못지 않게 두려운 것은 피해 시민들이 왜 세계적 수준의 우리 경찰의 검거 능력을 외면하고 있느냐에 있다.
신고 기피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신고를 않는 것은 범인의 보복 협박이 두렵거나 신고해 보았자 범인이 잡히지 않고 「오히려 귀찮다」 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물론 피해 기피자 중에는 온당치 않은 방법으로 돈을 모은 것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아예 신고를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귀찮다」는 것이다.
경찰의 빈번한 「오라 가라」에 응해야 하고 개중에는 수사비 협조에 응해야 한다는 소문도 들어 아예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빚어지는 신고 기피 현상이다.
범죄, 그것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한꺼번에 노리는 중대 범죄에 대한 국민의 경찰신고율이 이처럼 낮은 것은 우리 경찰이 두고두고 반성해 볼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이 기대하는 경찰의 모습은 한마디로 사회 정의를 실현 시켜 주는「민중의 지팡이」 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항상 공정하고 친절하게 봉사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일반에게 경찰이 진정한 사회 정의를 실현 시켜 주는 「미더운 존재」로 부각되었느냐에 대해 의심을 받는다면 명예스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경찰이 범죄인에게는 두려운 존재가 될지언정 선량한 국민에게는 어쩐지 친근감이 가고 「우리편」 이며 법용 지켜 주는 기둥이나 보루로서 인식되어져야 할 것이다.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한 일면이 조금이라도 엿 보이는 한 「우리편」 이 아니고 「저편」이 될 것이다.
교통 사범을 다스리는데 신분의 고하가 없고 도둑을 잡아 주고 억울함을 공정 무사하게 풀어 주는 곳이 경찰이라는 인식이 뿌리 내릴 때 존경을 받고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다른 어느 날 보다 이날을 기억해 경찰의 노고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도 새로운 경찰 상에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혼란의 와중에서 창설된 경찰은 건국의 기초를 닦았고 6.25동란을 전무해서는 꽃다운 나이의 우리 젊은 경찰이 많은 피를 흘리기도 했다. 때로는 정치와 지나치게 밀착된 나머지 경찰이 정권의 사병으로 전락된 역사도 있었고 근년 들어서 하형사 사건 의령 총기 사고 김근조 고문 치사 사건 등 얼룩진 경찰 상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기도 했다.
경찰의 인원 증원이나 수사 장비의 현대화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국민의 경찰에 대한 신뢰를 쌓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경찰은 이날을 계기로 국민이 기대하는 경찰 상은 과연 어떠한 것이고 경찰 본연의 업무가 무엇인가를 다시 인식·확인하고 가다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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