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제2의 남이섬 ‘탐나라공화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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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의 사진이 무엇으로 보이시는가. 길게 누운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시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상상력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남이섬 신화의 주인공 강우현(61)과 같은 상상을 했으니 말이다.

강우현 전 남이섬 대표가 제주도에 내려간 지 5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초부터 제주도를 수시로 드나들며 모종의 작업을 진행했던 그는 지난해 말 남이섬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뒤 아예 제주도에 눌러앉았다. 제주시 한림읍 중산간 지역에 자리한 약 10만㎡(3만 평) 면적의 풀밭에서 그는 직원 7명과 함께 제2의 남이섬 신화를 벼렸다. 그리고 지난 9일 제주 탐나라공화국 개국을 선언했다.

17일 현장에서 확인한 탐나라공화국은, 말하자면 강우현 표 화산 테마파크였다. 화산섬 제주도의 특징을 포착해 또 하나의 상상나라를 건설하고 있었다. 제주도에서도 그는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았다. 우선 땅부터 팠는데, 바위가 나오면 바위를 피해서 땅을 팠다. 그랬더니 2∼3m 깊이의 구불구불한 길이 생겼다. 그 길 모퉁이 한쪽을 살짝 다듬어 조성한 공간이 사진에 등장하는 ‘화룡점정’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에서 디자인 패턴을 딴 기념품이나, 주변 오름의 능선을 빼닮은 바위 조형물, 현무암을 녹여서 만든 화산 모양의 기념품, 제주 흙돼지 죽통을 이어 붙여 제작한 조명까지 곳곳에서 강우현 특유의 감각이 번뜩였다. 중국 노자사상을 끌어오고,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의 줄거리를 빌리는 등 기발한 발상도 여전했다(『인어공주』는 춘천 남이섬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다).

강우현 대표는 “제주도는 화산이다. 화산을 메인 테마로 삼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의 자연을 살리려다 보니 노자사상과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노자사상과 더불어 『삼국지』의 제갈량이 주요 소재로 활용된 걸 보고 중국인 관광객을 염두에 둔 포석을 읽었다.

탐나라공화국은 개국했지만, 문을 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접근을 일절 불허한 건 아니다. 꽃씨를 갖고 오거나 1시간 이상 현장 작업을 약속하면 입장할 수 있다. 아직 어수선한 공사현장을 드러내 보이는 배짱이 강우현답다. 이미 SNS에는 꽃씨 들고 찾아간 성미 급한 방문자의 감탄 섞인 후기가 수두룩하다. 정식 개장은 내년 이맘때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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