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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교’ 덕분에 … 45년만에 가수의 꿈 이룬 할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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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어릴 적 “커서 가수 되겠다”는 말을 들은 김원두씨. 67세에 가수가 됐다.

“오대양도 육대주도 울산항구 문전이다/간절곶 뜨는 태양 돌고래도 춤을 추는/울산대교 아름다워라….”

 지난 23일 울산시 노인복지관 2층 대강당에서 선보인 ‘울산대교’의 가사 일부분이다. 울산대교 개통(6월 1일)을 기념하는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른 이는 울산시 노인복지관 노인밴드에서 보컬로 활동 중인 김원두(67)씨. 그는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울산시 중구 우정동에서 4남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동네 사람들로부터 “커서 가수 하면 되겠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도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행복했다. 22세가 되던 해 울산의 한 방송국이 주최한 콩쿠르에서 월 장원으로 뽑힌 뒤 전국 시·도 대항 콩쿠르에서 경남 대표로 나가 대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고(故) 박춘석 작곡가는 “한 곡만 듣고 100점을 주기 힘들다”며 99점을 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군 입대 후에는 문화 선전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며 가수의 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사는 게 녹록지 않았다. 제대 후 소규모 공연단에 들어가 업소를 돌며 색소폰을 불었지만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김씨는 “지금 돈으로 한 달에 20만~50만원 정도 벌었지만 도저히 결혼하고 자식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집안도 넉넉하지 않아 음반을 만들어 가수로 활동하는 것은 꿈을 꾸지 못했다.

 결국 김씨는 단원 생활을 접고 고려아연·현대중공업 등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30세에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았다. 과거에 알고 지내던 가수의 모습을 TV로 보며 위안을 삼았다.

 1998년 보험회사 영업소장으로 일하던 중 우수 영업상을 받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가수 설운도와 함께 가요 ‘바닷가에서’를 불렀다. 50세가 됐지만 그때 다시 노래를 해야겠다는 희망이 타올랐다. 음반 제작의 꿈을 안고 틈틈이 연습하며 돈을 모았다. 하지만 보험회사 퇴직 후인 2000년 지인의 공장에 보증을 섰다가 전 재산을 날리는 비운을 겪었다.

 가수의 꿈을 포기하다시피한 한 김씨는 2010년 병원 주차장 관리업무를 맡다 4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최위일(70) 울산시 노인복지관 노인밴드 단장을 만났다. 최 단장이 “같이 노래 한번 해보자”고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시작한 밴드 활동이 벌써 5년이 됐다.

 지난해 참가한 울산 남구청장 주최 콩쿠르에서 김씨를 눈여겨본 울산 출신 황의웅 작곡가도 올해 초 연락을 해왔다. “곡이 있는데 한번 불러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이 ‘울산대교’였다. 지인 400여 명은 음반 제작비 3000만원을 모아줬다. 음반을 내는 데 결정적 힘이 된 것은 물론이다.

 김씨는 “노래를 부르며 지난 세월의 아쉬움과 기쁨이 겹쳐 한없이 눈물이 나왔다”며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글·사진=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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