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의회 초심 잃은 해외연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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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전시의회는 경기 침체와 복지예산 부담 등을 이유로 지난해 해외연수(공무 국외활동) 예산 5220만원을 전액 반납했다. 김인식 의장은 “어려운 경제 현실을 고려해 시민들과 고통을 분담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뭇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상임위원회별로 앞다퉈 해외연수를 가고 있고 연수 프로그램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관광지가 포함된 연수를 다녀오는가 하면 다른 상임위원회 예산까지 끌어다 쓰기로 한 상임위도 있다.

 대전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 소속 의원 5명은 다음 달 15일부터 8박9일간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 북유럽 3개국을 찾는다. 선진교육과 복지정책을 벤치마킹 한다는 게 목적이다. 1인당 경비는 480만원이 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또 산업건설위원회 소속 김종천·박병철·전문학 의원 등 3명은 31일부터 다음 달 9일까지 열흘간 이탈리아·독일·오스트리아·체코 등 4개 국을 둘러본다. 대전시가 주관하는 ‘트램(노면전차) 운영 해외사례 조사’에 동행한다. 트램은 권선택 대전시장이 추진하는 도시철도 2호선 방식이다. 이미 권 시장이 지난 3월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현장을 둘러본 상태여서 중복 실사 논란이 일고 있다.

 모두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인 이들 의원은 상임위 전체 의원(6명)의 의사를 묻지 않고 연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인당 580만원의 경비는 행정자치위원회 등 다른 상임위에서 빌려다 쓰기로 했다. 산업건설위원회는 내년에 해외연수를 가기 때문에 올해 예산이 책정돼 있지 않다.

 지난달 19일엔 행정자치위원회 의원 5명이 프랑스와 독일 연수를 다녀왔다. 파리의 이응노 화백 레지던스 사업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생활체육 활성화 방안을 찾겠다는 취지였다. 이응노 레지던스는 대전시가 추진하는 지역 작가 대상 해외 체류 지원 프로그램이다. 연수를 다녀온 지 한 달이 다 됐지만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았다. 연수에 참가했던 한 시의원은 “할당된 연수 예산을 사용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했다. 이들은 수백만원을 들여 다음 달 8일부터 2박3일간 제주도에서 연찬회를 한다.

  대전경실련 이광진 사무처장은 “반복되는 일이지만 일정 공개 등 시민과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며 “무리한 일정보다는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보고 연구하는 연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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