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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칼럼] 인생후반을 위한 부부관계 6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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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선임기자

“집사람은 1683년 계해 정월 초하룻날 밤 12시쯤 태어나 42살에 세상을 마쳤다. 마음이 아름답고 행동이 단정하며 말이 적고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못하는 게 없었다. 부부 사이에 서로 공경함은 언제나 똑같았다…두 해 동안 내가 병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때 아침 저녁 쉼없이 병을 고치려고 간호했다. 그때 주위 사람들에게 ‘하늘이 나를 돕는다면 반드시 남편보다 나를 먼저 데려 가라’고 했다….”

약 300년 전 부인을 홀연히 떠나 보낸 선비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2014년 10월 대구의 고서점에서 발견된 일기 『갑진록』이다. 2년 뒤 5월 1일 기록이 끝난 날까지 아내를 그리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애틋한 사부곡(思婦曲)이다(중앙일보 5월 21일자).

이 글에서도 보여주듯 조선시대에는 수명이 길지 않았다. 이 사부곡에 나오는 여성의 42세는 당시 기준으로는 적지 않은 나이였을 터다. 그런데 2013년 기준으로 기대수명이 82세에 이른다. 거의 배로 늘어났고 90세를 넘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 긴 세월을 부부가 함께 보내려면 부부 관계도 리모델링해야 한다. 남녀가 따로 없다. 함께 노력해서 과거의 성역할(gender role)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나긴 노후를 보내면서 쓸쓸해질 수 있다. ‘삼식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과거의 관행에 갇혀 있어서 빚어지는 불편함이다. 반퇴시대에 필요한 부부 관계 6계명을 간추려봤다.

1. 반퇴시대 영순위는 화목한 부부 사이다= 당연한 얘기같지만 모든 부부 사이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 그러나 반퇴시대에는 화목해야 한다. 사소한 다툼이라도 피하거나 줄여야 한다. 반퇴시대에는 부부가 이인삼각으로 해나갈 게 많다. 잘 나가던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퇴직하고 나면 바깥 생활이 줄어들면서 사회적 대인관계는 크게 좁아진다. 그리 강하지 않은 관계는 퇴직을 계기로 바로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부부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환갑 이후 30년을 함께 보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모아놓은 재산이 많아도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헛일이다. 최고의 동반자와 마음이 안맞아서는 입지가 크게 좁아진다. 혹시 관계가 썩 좋지 않다면 지금부터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환갑을 넘겨 부부가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나 온천여행길에 다정하게 골프를 치는 모습을 상상해도 좋다.

2. 성역할 고정관념은 쓰레기통에 버려라= 삼식이 스트레스는 여자만 겪는 일이 아니다. 남자도 하루 세끼를 모두 집에서 먹는 게 어찌 즐거울까. 그런데도 삼식이로 불린다면 철저한 성역할 정비가 필요하다. 평소 삼식이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여자가 밥을 차린다는 전근대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혼자 있으면 당연히 스스로 밥 찾아 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집에서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세끼 먹을 생각도 해선 안된다. 뭔가 일을 만들어서 밖에 나가면 해결될 터다. 삼식이 스트레스는 아내가 남편 밥차려준다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퇴직 후는 물론이고 평소에 달라져야 한다. 하루 세끼 집에서 먹는 습관, 차려줘야 먹는 습관부터 벗어던져라.

3. 남녀는 다르지만 같다는 걸 잊지마라= 300년 전 사부곡에서 당시 남녀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못하는 게 없다는 얘기는 무엇일까. 여자와 남자의 다름(difference)을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생물학적인 성(sex) 차이가 있고, 이에 따른 사회활동의 차이도 있다. 엄청난 육체적 파워가 필요한 일은 여성에게 적합치 않다. 그러나 사회문화적인 성(gender)차이는 없다. 사부곡에는 ‘부부 사이에 서로 공경함은 언제나 똑같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성 평등(gender equality)을 의미한다. 차이가 있는 점을 제외하고는 똑같다는 얘기다. 성역할의 고정관념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서부터 반퇴시대의 새로운 부부 관계가 출발할 수 있다.

4. 가정 권력 크면 노후에 쓸쓸해진다= 농경시대의 가부장적 문화는 남녀가 사회문화적으로 같다는 걸 전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전통이 면면히 내려오면서 집안에서도 부부 갈등의 배경이 된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의 권력이 강하면 어떻게 될까.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다. 수명이 짧아서 그런대로 살면 됐다. 여성은 집안일을, 남성은 바같일로 성역할이 구분됐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제는 일상화하고 수명까지 길어지면서 가부장적 시대의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권력이 한쪽에 치우면 반드시 피로감이 쌓여서 균열이 온다. 더구나 권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배우자를 잃고 나면 적응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평소에 홀로서기를 연습해야 한다는 얘기다.

5. 친구 같은 남 같은 배우자로 지내라= 이제는 환갑 나이에도 젊어서 친구 모임이 많다. 퇴직 후 늘 배우자가 놀아줄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각자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사회생활이 다르다. 퇴직 후 30~40년 동안 배우자와 언제나 붙어 지내는 것도 마냥 즐거운 일일 순 없다. 이런 변화에 대비한 새로운 부부 관계를 지금부터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는 이유다.

6. 재산은 함께 관리하라= 국내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65세 노인 둘 중 하나는 상대적 빈곤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배우자가 사망하면 노후 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 젊어서는 어느 한쪽이 가계살림을 관장하더라도 나이가 들어서는 머리를 맞대고 함께 관리하는 게 좋다. 어느 쪽이 먼저 건강수명을 잃더라도 다른 쪽이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다. 둘이 머리를 맞대면 투자 실패를 줄이고 투자 기회를 살리는데도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선 평소 재산관리도 부부 사이에는 투명한 게 좋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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