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악몽’ 떠올리는 신흥국, 금리 먼저 내려 충격파 줄일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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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신흥국 시장이 다시 긴장하고 있다. ‘긴축 발작(Tantrum)’에 대한 공포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2일(현지시간) 미 프로비던스 상공회의소에서 한 연설은 신흥국에는 ‘공습경보’ 발령과 같은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Fed가 10년 만에 금리를 올릴 움직임을 보이자 신흥국 중앙은행이 시험대 위에 섰다”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ed는 2006년 6월 이후 기준금리를 올린 적이 없다. 미국의 양적완화(QE)로 세계 경제는 최장의 초저금리 시대를 지내 왔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와 일반 기업이 달러로 표시된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 규모만 9조 달러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각국 정부와 기업의 이자 부담은 커진다. 신흥국으로 몰렸던 자금이 유턴하며 아시아와 남미 등 신흥 시장은 자금 이탈로 인한 긴축 발작을 앓게 된다. 이미 경험이 있다.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QE 축소를 시사하자 신흥국으로 유입됐던 자금이 빠져나가며 신흥국의 통화와 채권·주식이 모두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나타났다.

 신흥국 중앙은행이 자본 이탈에 맞서 구축할 1차 방어선은 금리 인상이다. 투자자를 붙잡으려면 미국보다 나은 투자 환경이 필요한 탓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기 전에 먼저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 미리 금리를 낮춰 대응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놓은 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보조를 맞추는 전략이다. 사이먼 퀴자노-에번스 코메르츠방크 신흥시장 담당 애널리스트는 “일부 신흥국 중앙은행은 Fed가 금리를 올리기 전에 계속 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국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으로 시장에 개입하거나 은행의 외환 거래 통제를 강화하는 2차 방어선을 칠 수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신흥국은 막대한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쌓았다. IMF에 따르면 신흥국의 외환보유액은 총 7조7400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이 많다고 투기 세력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는 데다, 시장 개입도 쉽지 않다. 미국이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을 조정하는 신흥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해 보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FT는 “외환보유액을 활용한 시장 개입의 약발이 약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본 통제에 대해서는 실효성 의문도 커진다. 비용보다 이익이 적다는 판단에 멕시코와 칠레 등은 자본 통제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다고 FT는 전했다. 찰스 콜린스 국제금융협회(II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들이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나 자본 통제에 의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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