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버는데 벌금 수천만원 … 101조 불법 도박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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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모(40)씨는 2012년 1월 지인들과 함께 필리핀 마닐라에 사무실을 차린 뒤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개설했다. 김씨는 인터넷 기사 댓글이나 게시글에 도박 사이트 주소를 올리는 수법으로 사이트를 홍보했다. 김씨는 사이트 회원들에게 국내외 축구, 야구 경기가 열리기 전 경기 결과를 놓고 게임당 5000원부터 50만원까지 베팅하게 했다. 해외에 서버를 둔 덕에 인터넷 주소를 바꿔 가며 2년 반 동안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

 김씨 사이트를 통해 오간 도박 금액은 백수십억원에 달했다. 김씨는 올해 초 경찰의 감시망에 걸렸고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석준협 판사는 이달 초 도박 개장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김씨처럼 해외에 서버를 두고 포털사이트 댓글이나 스팸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회원을 모은 뒤 영업을 하는 온라인 도박장이 크게 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온라인 도박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국내 불법 도박 시장 규모가 최소 101조8263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과거 ‘하우스’로 대변되는 오프라인 도박과 달리 온라인 도박은 물리적 장소에 국한되지 않아 접근이 쉽고 적발 가능성도 작다. 2013년에는 개그맨 이수근씨와 방송인 탁재훈씨 등 유명 연예인들이 무더기로 불법 온라인 도박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기도 했다.

 형사정책연구원은 2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불법 도박 확산 방지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우남 의원과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이 주최한 이 심포지엄에서 강석구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불법 도박에 위협받는 대한민국’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불법 도박 근절 방안을 제안했다. 강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불법 도박 시장을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범정부적 단속기구를 설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불법 사행산업 감시·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접수된 사건을 조사하거나 수사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감위는 신고 내용을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할 수 있는 권한밖에 없다. 2009년 불법 도박을 감시하는 공무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었으나 처리되지 못했다.

 강 연구위원은 “불법 도박은 점조직으로 운영되면서 대포폰과 차명계좌로 회원 관리를 하는 조직적 범죄집단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단속하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단속기구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불법 도박 조직의 수익금을 철저하게 환수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많게는 수천억원대 수익을 올리는 이들 조직에 수천만원 수준의 벌금은 지나치게 가볍다는 얘기다. 형법상 도박개장죄와 복표발매죄는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불법 스포츠 베팅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강 연구위원은 “천문학적인 기대수익에 비하면 그 정도 처벌은 감수할 정도가 돼버린다”며 “범죄수익환수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박으로 얻은 수익을 강력하게 환수한다면 불법 도박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합법적 사행산업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해법으로 제시됐다. 강 연구위원은 “불법 사행산업 수요를 합법시장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지금까지 합법적 사행사업에 대해서만 매출총량제를 실시해 왔으나 앞으로는 불법 사행산업도 포함시켜 통합 매출총량제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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