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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폭주하는 자동차에 오른 두 사내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폭주하는 자동차에 오른 두 사내
‘매드맥스’를 연기한 멜 깁슨 vs 톰 하디

모든 것을 잃고 껍질만 남은 사나이, 맥스 라커탄스키. 그는 1970년대 끝자락에 등장한 문제적 인간이었다. “희망을 갖는 건 무모하다”고 말할 정도로 까칠하고 염세적이며 반쯤은 미쳐 있는 영웅. 사람들은 초능력 하나 없는 너무도 인간적인 이 안티 히어로에게 연민을 느꼈다. ‘매드맥스’ 3부작(1979~1985)은 전 세계에서 흥행했고, 맥스를 연기한 멜 깁슨(59)은 수퍼 스타가 됐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마블과 DC의 망또를 입은 영웅들이 하늘을 마구잡이로 날아다니고 있는 2015년, 맥스가 혈혈단신으로 돌아왔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5월 14일 개봉, 조지 밀러 감독, 이하 ‘분노의 도로’)란 제목으로. 2대 맥스는 톰 하디(38)다. 그는 여전히 지쳐 있고 고독하다. 하지만 1대 맥스보다 훨씬 더 처절하고 강력한 액션을 선보인다. 하디는 깁슨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깁슨 대 하디, 두 절대 강자를 비교해본다.

<1대 맥스 멜 깁슨>

어떻게 섭외했나 │ 멜 깁슨이 ‘매드맥스’(1979)에 캐스팅 됐을때, 그는 23세 풋내기 무명 배우였다. 술집에서 싸우다 얼굴에 멍이 든 채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그 패기가 캐스팅 감독의 눈에 들었다. 출연료는 고작 21달러. 오죽 인지도가 없었으면 예고편에도 주인공인 그를 넣지 않았다고 한다. ‘매드맥스’ 시리즈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자 멜 깁슨은 무명의 설움을 떨치고 1980년대 ‘호주 뉴웨이브 필름’의 상징이 됐다. 그는 호주 배우 중 처음으로 할리우드에서 출연료 100만 달러를 받는 배우가 됐다.

맥스의 트레이드마크│ 검정색 가죽 재킷, 가죽 바지, 가죽 부츠

3단 구성은 맥스의 상징이다. 보기만 해도 땀이 찰 것 같은 이 스타일은 1편의 경찰 제복이었다. 당시 제작비가 없어 멜 깁슨의 제복만 가죽으로 만들고, 동료 경찰들은 비닐로 만들었다. 1편에서 광택이 나던 가죽은 ‘매드맥스2’(1981)에 이르러 닳고 헤졌는데, 이는 맥스를 더욱 고독하고 섹시한 남자로 변신시켰다. 톰 하디도 특별히 재킷을 입고 나온다. 워보이족에게 빼앗기지만, 엄청난 집착으로 되찾는 데 성공한다.

처음엔 사랑꾼 │ 맥스가 처음부터 미쳤던 것은 아니다. 그는 1편 중반까지 아내에게 모닝 커피를 타주고, 애교를 떨며,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던 로맨티스트였다. 아내와 데이트 할 땐 어찌나 천진난만한지. 깁슨은 풍성한 속눈썹을 휘날리며 말갛게 웃는 얼굴로 여심을 흔들었다. 맥스가 가족과 동료를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고독한 전사가 된 건 애초에 그가 사랑이 넘치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깁슨이 동공을 흔들며 두려움을 토해내는 장면을 기억해보자. 얼마나 순수했는지. “나는 두려워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이 일을 계속하다가 저도 미친놈이 될 것 같아요!”

크레이지 드라이버 │ 3부작의 명장면은 맥스가 운전대를 잡으면서 펼쳐진다. 1편에서 600마력의 8기통 자동차, 인터셉터를 보고 눈을 희번덕거리던 맥스를 기억하는가. 원조 맥스는 타고난 속도광이었다. 인터셉터를 타고 피도 눈물도 없이 폭주족을 몰살한 그는 2편에선 정유 차량을 운전하며 개떼처럼 몰려오는 악당을 해치웠고, 3편에선 기차를 운전해 ‘바터 타운’의 여왕으로 분한 티나 터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분노와 복수의 아이콘 │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인가. 깁슨은 ‘매드맥스’ 이후 유독 가족을 잃거나, 배신당한 뒤 심신이 불안한 상태에서 복수하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리썰 웨폰’(1987, 리처드 도너 감독) ‘브레이브 하트’(1995, 멜 깁슨 감독) ‘페이백’(1999, 브라이언 헬겔랜드 감독) 등이 그렇다. 걸걸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거친 사내의 페로몬 때문일까. 이빨을 드러내고 웃을 때의 서슬퍼런 광기 때문일까. 아니면 파란 눈동자의 유약함 때문일까. 어쨌든 복잡하게 잘생긴 얼굴은 맥스와 만나면서 흥행의 축포를 터트렸다.

<2대 맥스 톰 하디>

어떻게 섭외했나 │ 밀러 감독은 하디의 동물적인 카리스마에서, 젊은 시절 깁슨의 모습을 발견했다. 특히 하디의 이중성에 흠뻑 빠졌다. “친근한 동시에 신비롭고, 거칠지만 나약하며, 따스하지만 위험도 감지된다”는 것이다. 고독한 총잡이, 외로운 사무라이, 바이킹 전사 등으로 불리던 맥스라는 신화적 인물에 현실성을 부여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정작 하디는 맥스를 맡기 전까지 ‘매드맥스’ 시리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뒤늦게 이 세계에 꽂힌 그는 1대 맥스와는 다른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기로 마음 먹는다.

소름 돋는 인연 │ 하디가 맥스를 맡은 것은 사실 운명이었다. 그가 열일곱 살에 선물받은 개 이름이 바로 매드맥스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착한 강아지에게 매드(미친)라고 부르는 게 미안해서, 그 이름을 싫어했다. 그로부터 17년 뒤 개가 죽고나서, 하디는 맥스 역을 맡게 된다.

럭비 선수 출신, 몸 연기의 달인 │ 하디는 황야를 배회하는 날짐승처럼 보인다. 도마뱀을 산 채로 잡아먹으며 등장할 때부터 야수성이 감지되는데, 그는 말을 하는 대신 동물처럼 그르렁거리며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밀러 감독은 무성 영화처럼 모든 것을 몸으로 표현하길 주문했다. 대사가 거의 없는 하디의 몸놀림은 어딘가 모르게 처절하고 다급하다. 게다가 액션을 대부분 직접 소화했다. 심지어 달리는 차에 거꾸로 매달렸던 장면도 본인이었다.

내가 더 미친 것 같아 │ 소중한 사람을 잃고 황야를 떠돈다는 점에서 하디의 맥스는 ‘매드맥스2’의 맥스와 설정이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하디가 연기한 맥스는 영화 내내 죽은 아이의 환각에 시달린다는 것. 그래서인지 원조 맥스보다 한층 더 음울하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하디의 말을 들어보자. “밀러의 황야엔 항상 대가와 고통이 뒤따른다. 고통받는 수퍼 히어로는 멋있지 않다. 맥스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 연기가 편해졌다.”

매드 퓨리오사 │ 깁슨이 홀로 3부작을 끌고 갔다면 하디는 샤를리즈 테론(40)과 분량을 나눠야 했다. 사령관 퓨리오사 역을 맡은 테론은 하디와 동등한, 어쩌면 더 큰 존재감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22세기 디스토피아에서 독재자 임모탄(휴 키스 번)에 저항해 탈출을 시도하는 퓨리오사는 어쩌다 일행이 된 방랑자 맥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희망을 믿는 자인 퓨리오사와 희망을 믿지 않는 자 맥스의 충돌과 협동은 ‘분노의 도로’를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든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깁슨 형님, 만나주세요!
하디는 촬영 전 깁슨에게 점심을 청했다. 조언을 얻기 위해서였다. 맥스의 정수를 전수 받은 뒤 하디는 고마움의 표시로 우정 팔찌를 건냈다. 영화에서 내내 차고 나온 팔찌와 같은 것이었다. 이후 깁슨은 하디에게 “너는 나보다 더 미친 맥스를 연기할 수 있을 거야”라고 북돋아줬다고. 사진은 지난 7일 시사회에서 만난 두사람.

글=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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