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관이 경찰의 긍지와 명예를 상징하는 자신의 경찰 정모(正帽)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소포로 보냈다. 지난해 11월 농민 시위와 관련해 농민 2명이 사망하고 경찰의 공권력이 비난받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유모(36) 경감이 2일 "경찰의 명예를 상징하는 모자를 국민에게 반납하는 의미로 소포와 편지를 보냈다"며 한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의 글을 띄워 알려졌다. 이 글은 "경찰과 전.의경들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는 반응과 함께 네티즌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소포를 부친 유 경감은 1993년 경찰대를 졸업하고 시위 현장에서 전경대를 지휘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서울에서 근무 중이다. 유 경감은 글에서 "내 가슴에 명예가 없다면 이번 같은 일을 다시 당했을 때 지금보다 덜 아플 것이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모자를 보낸 경위를 설명했다. 모자는 "승진하면서 받아들고 기분 좋았던 내 정모"라고 말했다. 경찰 정모는 경찰관이 순직한 경우 장례식장에서 경찰관의 빈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경찰관에게는 소중한 물건이다. 일상적으로는 쓰지 않으며 공식 행사가 있을 때만 착용한다.
그는 "자신의 지시를 받고 '폭력배'가 돼버린 동료와 대원들에게 사과한다"며 자신과 함께 일한 전.의경을 "훈련 때 사람은커녕 샌드백도 제대로 때리지 못할 정도로 여리고 순하게 자란 막내동생 같은 대원들"이라고 소개했다.
또 "공포스러운 시위 현장에서는 시위대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대원들의 안전이 최고의 목표였다"고 토로했다. "방패로 시위대를 찍는 듯한 행위는 공격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시위대를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처절한 몸짓"이라고 했다.
유 경감은 "대원들을 '경찰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공권력'이라는 명분으로 내몰아 시위대와 맞서게 했는데 지금 사회는 그들에게 요구했던 행동을 거리낌없이 '폭력'이라고 이야기한다"고 개탄했다. 그는 "정당성이 훼손된 공권력이 어떻게 범죄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겠는가"라며 "(농민 사망에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이 사임함으로써 경찰은 공권력의 정당성이라는 발판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유 경감은 기자와의 인터뷰는 거절했다.
김승현 기자